세계 지도자들 '애도'…'냉전 종식'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사망
입력 2022.08.31 10:26
수정 2022.08.31 18:43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공동묘지 안장
EU·유엔·각국 정상들 애도
동·서독 통일 용인 등 공로 평화노벨상 수상자
자국서 소련 붕괴 '배신자' 혹평도
반세기 가까이 이어져 온 냉전을 끝낸 주역이자 옛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향년 91세의 나이로 3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로이터,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 임상병원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이날 저녁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공동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1931년 러시아 남서부 스타브로폴에서 태어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모스크바 국립대 법대를 졸업한 후 젊은 시절부터 공산당에서 활동했다.
그는 1985년 54세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시작으로 1991년까지 구소련의 최고 권력자로 재임하면서 냉전을 종식시킨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아울러 소련의 정치·경제 체제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집권 이후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추진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1989년 12월 몰타에서 조지 H.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역사적 담판을 거친 후 냉전의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또한 그해 민주화 시위가 동유럽 공산주의권 국가 사이에 퍼지자 이를 묵인하고 이들 국가에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브레즈네프 독트린 주장을 폐기했으며, 그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동서독 통일을 용인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 때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한국과도 연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에 호응해 1990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소련 정상으로서는 최초로 한국 정상과 만났고, 그해 9월 한국과 수교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국내에선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급진적 개혁을 밀어붙여 민족 갈등과 소련의 붕괴를 불러왔다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또 보리스 옐친 등 급진파를 통제하지 못 했다는 혹평도 받는다. 소련의 해체를 초래한 장본인이자 동구권을 서방에 넘겨준 '배신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경제 침체에 체르노빌 사태까지 겹친 상황에서 섣불리 시장경제를 도입했으나 물가 급등과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을 막지 못한 것도 몰락의 요인으로 지적됐다.
그는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 이후 대통령 직을 지키는 데 실패했고, 보리스 옐친이 소련의 해체를 공식 주도하자 그해 12월 사임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그는 이후 재출마 시도를 했으나 득표율은 저조했고, 최근에는 모스크바 외곽의 다차(러시아의 시골 저택)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국 지도자들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트위터를 통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자유로운 유럽의 길을 열어 준 존경받는 지도자였다"고 회고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냉전의 평화적 종식을 위해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은 일을 했다"고 애도했다. 그는 유엔 홈페이지에 올린 애도사에서 "유엔을 대표해 고르바초프의 가족과 러시아 연방의 국민과 정부에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그는 협상, 개혁, 투명성, 군축의 길을 추구하면서 이 중요한 통찰을 실천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트위터에서 "고르바초프의 죽음을 전해 듣고 슬펐다. 나는 냉전을 평화로운 결말로 이끈 그가 보여준 용기와 진실함에 항상 감탄했다"고 조의를 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애도를 표명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푸틴 대통령은 오전에 고르바초프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전문을 보낼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