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배상 판결' 제2연평해전 유족 김한나씨 "처음부터 돈이 목적 아니었다"
입력 2022.08.26 05:17
수정 2022.08.26 21:11
법원 "북한과 김정은, 제2연평해전 유족에 1인당 2000만원 배상" 판결
김한나씨 "올해 제2연평해전 20주년, 사과도 제대로 못 받아…역사에 기록 남기고 싶었다"
법조계 "돈 받으려면 실제 압류 재산 있고 우리 사법권 미쳐야…현실적으로 배상 쉽지 않아"
"우리 국가 기관이 연평해전 북한 책임 공식 인정한 것…배상과는 별개로 승소 자체에 의미 있어"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한상국 상사의 배우자 김한나 씨와 참전 용사들이 북한 정권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 승소했다. 북한에 우리의 사법권이 미치지 못해 현실적으로 배상을 받기는 힘들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대한민국 헌법기관인 법원이 판결을 내려 연평해전의 책임이 북한에 있음을 우리 국가 기관이 공식 인정하게 된 만큼 배상과는 별개로 승소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제2연평해전은 지난 2002년 6월 29일 북한경비정들이 서해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장시간 체류하자 이를 물러나게 하기 위해 출동한 우리 해군의 고속정을 북한 경비정이 먼저 공격해 옴으로써 발발했다. 이 전투로 우리 군은 해군 6명 전사, 18명 부상,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 침몰 등의 피해를 입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86단독 김상근 판사는 김씨 등 8명이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북한과 김 위원장은 원고들에게 1인당 2000만원과 2002년 6월 29일부터 연 5%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시하고 "헌법 및 국내법상 반국가단체인 북한은 민사소송법에서 정한 비법인 사단이며 이 사건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내 법원에 재판권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과 김 위원장은 이 소송에 대응하지 않았다. 다만, 법원은 공시 송달로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리고 판결을 선고했다.
승소한 김한나 씨는 감격에 목이 메었다. 김 씨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저도 이제 그만하려고요. 이번이 마지막이었어요. 많이 지쳤거든요. 남편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이렇게 (법원으로부터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다는 게 너무 기뻐요."라고 밝혔다.
김 씨는 "북한의 잘못을 완전히 인정한 것이잖아요. 올해가 제2연평해전 20주년인데, 시기도 딱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제가 용기를 내서 (소송을) 한 이유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처음부터 돈이 목적은 아니었어요. 저들이 언제 또 이런 도발을 해서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라고 말했다.
김 씨는 특히 "재판장님께서 마지막 재판에서 말할 기회를 줬어요. 그 때 제가 '올해는 제2연평해전 20주년 입니다. 분명 북한이 저지른 일인데도 제대로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책임을 묻고, 판결로서 역사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라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재판장님께서 고개를 약간 끄덕거리셨어요. 우리 참전 용사분들 가슴에 응어리진게 많아요. 그분들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잖아요. 그 분들에게 (이 판결이)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강조했다.
법조계는 유족들이 당장 배상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한국전쟁에서 북한군 포로가 된 한모 씨와 노모 씨도 북한과 김 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내 2020년 7월 1심에서 승소했지만, 배상금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 한 씨와 노 씨는 남북경제화협력재단(경문협)에 대한 추심 명령을 받아냈으나, 이후 경문협의 항고가 인정돼 추심이 무산됐다.
김소연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인해 북한이 (유가족에게) 지급해야 할 돈이 생기게 됐다. (유가족 분들이) 경문협과 같은 제3채무자에게 북한·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을 채권을 넘기라고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긴 것)"이라면서도 "다만, 현실적으로 (배상을 받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성남 변호사 역시 "돈을 받으려면, 실제 재산이 있어야 압류를 할 수 있다. 나아가 압류를 하려면, 우리 사법권이 미쳐야 한다"며 "북한이 아니라 일본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해도 우리 법원에서 압류를 일방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이런 경우 (국제) 공조를 통해서 (압류를 진행)하게 되는데, (북한의 경우) 공조가 안 된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북한이) 스스로 내놓지 않으면, (배상을) 받아내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만약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할 경우에는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박 변호사는 "(법원 판결이 나온 후로부터) 시효가 10년이니까, 10년 안에 통일이 된다면 (배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며 “이번 재판부는 북한을 '비법인 사단'이라고 규정했는데, 비슷한 예로 교회가 있다. 법인 등록은 안 했지만 법인 비슷한 것들을 인정해 주고 있다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다만, 통일을 하게 되면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을) 끌어안는 형식의 통일이 발생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채무도 흡수하게 된다. 반대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통일을 진행한다면, 북한이라는 비법인 사단이 사라지면서 채무도 사라질 위험이 발생한다"며 "그렇기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채무를 계승하는 형식으로 진행해 (배상하지 않을까) 싶다"고 부연했다.
법조인들은 이번 승소는 대한민국 헌법기관인 법원이 내린 판결인 만큼 배상과는 별개로, 승소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기윤 변호사는 "국가 기관이 공식적으로 (연평해전을 발생시킨) 북한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준 것이다. 이번 판결로 인해 공문서로 남게 됐는데, 이것 자체가 대한민국 정부에서 인정을 해준 것이다. 이 공문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와 사법 협약을 맺은 다른 곳에서 또 압류신청 등과 같은 집행을 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변호사 역시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헌법에 기반해 해석한 판단"이라며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한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결은) 계속될 것 같다.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아픈 판결"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