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법'과 '거부권'…'처럼회' 초선 폭주에도 野 지도부·중진 신중한 이유
입력 2022.08.25 13:41
수정 2022.08.25 13:43
김용민 "패스트트랙으로 통과시켜
야" 주장…거부권 행사되면 '말짱 꽝'
초선이라 야당 모르나…"검수완박
때처럼 하면 게도 구럭도 잃을 수도"
더불어민주당 초선 강경파 사조직 '처럼회'를 중심으로 하는 '김건희 특검법' 발의 등 입법폭주 재연 조짐에 지도부와 다선 의원들은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의 소재가 달라지면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민 여론을 보다 세심히 살펴가면서 민심을 등에 업고 싸울 필요성을 느낀 까닭으로 보인다.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5일 오전 정책조정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해 "개별 의원이 발의한 상황"이라며 "당장 우리 당내의 최우선 논의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앞서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와 주가조작·허위경력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대표발의했다.
법안 발의에는 강민정·김승원·양이원영·유정주·윤영덕·최혜영·황운하 의원 등 '처럼회' 소속 초선 강경파 의원들과 함께 8·28 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인 서영교·정청래·장경태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또 민형배 무소속 의원도 공동발의로 가담했다.
김용민 의원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필요하면 패스트트랙을 통해서라도 통과를 시켜야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김 의원의 발언을 놓고서는 야당 생활을 처음 해보는 '처럼회' 초선 의원들이 정치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당 안팎의 비판이 제기된다.
과거 민주당이 공직선거법·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으로 강행하고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감행할 때에는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이 모두 민주당에 있었다. 따라서 명분과 절차, 국민여론을 살피지 않고 '입법 폭주'를 하더라도, 선거에서 민심에 의해 심판을 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일단 법을 발효시킬 수는 있었다.
진성준 "패스트트랙 의견은 섣불러…
국회법 지켜지지 않으면 그 때 검토"
전해철 "국정조사 우선적으로 처리"
명분 갖춰가는 '빌드업' 하겠다는 뜻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 권력이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국회에서 막무가내로 법을 통과시키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 제53조 2항에 의거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거부권이 행사되면 민주당과 민주당에 우호적인 의석만으로는 법안을 재의결할 수가 없다"며 "과거 여당 시절만 떠올리며 '입법 폭주'를 하다가는 법안은 거부권에 부딪혀 좌초되고 민심마저 돌아서는 '게도 구럭도 잃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수반하는 행위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고생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5년 임기 중 각각 7회와 6회 거부권을 행사하는데 그쳤다. 게다가 본인의 배우자 의혹을 규명하자는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한층 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런데 국회에서의 입법 과정과 절차에서 흠결이 발생한다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아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9월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을 거부하면서 "국회가 좀 이상하게 끝났다"고 말했다.
해임건의안 거부는 68년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자 독재정권 때도 없던 일이라 정치적 부담이 매우 컸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이 해임건의안 상정에 반발하며 항의하는 와중에 정세균 국회의장이 일방적으로 차수변경을 선포하고 안건을 상정해 표결에 부친 것을 문제삼았던 것이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앞서 '검수완박'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국민들은 국회에서 어느 일방이 타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자체를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며 "패스트트랙 강행 처리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기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국민 여론이 돌아서면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의 '황금열쇠'를 얻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짚었다.
여소야대 상황선 '거부권' 염두에 둬야
임기 중 노태우 7회, 노무현 6회 발동
"국민여론 때문에 거부권 못 쓰거나,
쓰더라도 상당한 내상 입도록 몰아야"
이 때문에 민주당 원내지도부도 명분과 절차를 갖추고 국민 여론을 살펴가면서, 민심을 등에 업고 법안을 처리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코너로 몰아가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자는 의견은 아직 섣부른 예단"이라며 "'김건희 특검법'은 국회법이 정한 순서대로 심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만일 때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상정이나 심사를 하지 않으면 그 때 패스트트랙 지정 문제를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국회법의 규정에 따라 절차를 밟아나가면서 소수여당인 국민의힘이 일부러 상정을 하지 않는 등 상대방의 잘못을 먼저 유도한 뒤, 그 때 국민 여론에 호소하면서 법안 처리를 압박한다는 전략을 드러낸 셈이다. 이렇게 해야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하지 못하거나, 하더라도 정치적 부담을 가중시켜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후폭풍을 감내하게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해철 의원이 "특검은 수사기관에서 충분히 수사를 하고, 미흡했을 때 해야하는 것"이라며 "국정조사요구서를 이미 제출했으니, 국정조사를 우선적으로 잘 처리해 국민적 의혹이 있다고 하면 함께 푸는 것이 맞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해 충분한 수사 없이 무혐의·불송치 결정이 나온다든지, 국민의힘이 국정조사 요구에 끝끝내 응하지 않는다든지, 혹은 국조에 돌입하더라도 오히려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든지 하는 식으로 국민의 공분을 일으켜 민심을 민주당 편으로 더 돌려세우는 '빌드업' 절차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헌정사를 살펴봐도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대통령 거부권이 수 회 발동됐었다"며 "야당 생활을 해보지 않은 풋내기 초선 '처럼회' 의원들은 알지도 못하겠지만, 거대야당은 대통령이 여론 부담 때문에 거부권을 발동하지 못하거나, 발동하더라도 상당한 내상을 입어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이 소재를 달리하는 상태에서는 명분과 절차 등 모양새를 갖추고 국민 여론에 호소하면서 상대방을 압박하는 싸움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2024년 총선 전까지 대통령과 소수여당,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있는 거대 야당 간에 꼬투리를 내주지 않으면서 스스로는 명분을 완벽하게 갖추려 하는 '명분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