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실패와 집값 상승이 낳은 부동산대책 '중독' [배수람의 앞담]
입력 2022.08.24 07:02
수정 2022.08.24 05:20
尹정부, 270만가구 규모 8·16 공급대책 발표
공공→민간 전환, 청사진만 제시
원희룡 "부동산정책으로 단기간 집값 상승 없을 것"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공급대책이 나왔다.
당초 목표로 설정한 250만가구에 20만가구를 더해 향후 5년간 270만가구를 공급한단 계획이다. 골자는 이전 정부와 달리 공공이 아닌 민간 중심으로 도심 내 주택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신규 정비구역 지정을 늘리고 재건축 추진의 걸림돌이 되는 재초환, 안전진단 등 규제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 나간단 방침이다. 중복·중첩된 심의절차는 통합해 원스톱으로 진행, 공급 시점을 예상보다 앞당기겠단 목표다.
이번 8·16대책을 놓고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부동산 문제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공식적으로 처음 공개되는 대책인 데다 새 정부 출범 100일 이내 마련하겠다고 장관까지 나서서 큰소리친 탓에 시장의 기대감은 한껏 고조된 상태였다.
중부지방의 기록적인 폭우로 일주일이나 더 기다려 받은 공급대책인데 막상 까놓고 보니 이렇다 할 실행계획은 빠진 채 청사진만 제시한 수준이라니. 몇몇 부동산 전문가는 "진작 발표했어도 됐을 내용"이라며 "평가라고 할 게 없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새 정부 들어 '공공→민간'으로 공급정책을 전환한다는 내용은 대선 이전부터 기정사실화됐던 만큼 진전된 내용이 포함될 거라 예상했던 기자 역시 다소 아쉬움이 남긴 했다.
먹고 사는 문제긴 하나 한편으론 언제부터 부동산대책 발표에 이렇게 온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나 하는 생각도 스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이 같은 관심은 최근 몇 년간 집값이 천정부지 치솟으면서 찍어내듯 대책을 마련한 이전 정부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내내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는 해소되지 못했고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정부의 주택정책은 외려 시장을 자극하는 불쏘시개가 됐다. 당시 시장에선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공공연한 우스갯소리로 통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100일 맞이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부동산정책은 어떤 걸 해서 시장을 좌우하기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지 않는 것, 시장이 잘 작동하도록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는 것이 더 근본적이고 올바른 접근이라 생각한다"며 "(정책으로) 단기적인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바람이 있다면 크게 기대를 안 하시는 게 좋지 않겠나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자극적인 것을 좇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전보다 더 큰 자극을 찾게 된다. 졸속으로 마련된 정책의 실패와 계속된 집값 상승은 우리를 부동산 대책에 대한 '중독'에 빠뜨린 듯하다. 마치 대책 발표 이후 시장에 곧장 반응이 오지 않으면 이상한 것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원 장관의 발언처럼 8·16대책 발표 이후에도 시장은 고요하다. 정부는 규제 완화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금리 인상으로 집값이 일부 안정세로 돌아서긴 했으나 여전히 시장에 풀린 유동성이 국지적인 가격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무엇보다 이전 정부처럼 그때그때 급조한 정책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목표다. 국토부는 금번 대책으로 중장기적 주거안정 방안은 마련됐으니 사안에 따라 세부 이행방안을 차차 다듬어 나가겠단 계획이다. 현 정부 첫 부동산대책에 대한 비판은 그때가서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