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개선, 재계가 먼저…최태원-허창수 '선봉'
입력 2022.07.04 11:04
수정 2022.07.04 13:29
전경련-경단련 한일재계회의…'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회귀'
최태원 상의 회장, 日상의 회장에 한일 상의 회장단 회의 재개 제안
한일 정상회담이 무산되는 등 정부 차원에서의 한일관계 개선 움직임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민간 경제계가 먼저 양국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고 있다. 전통적으로 대(對) 일본 네트워크를 담당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물론, 국내 대표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까지 발 벗고 나섰다.
전경련은 오랜 대화 파트너인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과 3년 만에 만남을 재개했다.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제29회 한국재계회의를 열고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도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 등 경제인들이 양국 경제협력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날 회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한일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파트너십)으로의 회귀’가 화두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10월 한일 양국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자는 차원에서 양국 정상이 합의한 11개 항의 공동선언을 뜻한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한일관계 개선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답이 있다”면서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고,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조한 이 선언을 지금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선언의 취지에 따라 한일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 상호 수출규제 폐지, 한일 통화스왑 재개, 한국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등 현안이 한꺼번에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도 “한일관계가 어려울수록 98년 한일파트너십 선언의 정신을 존중하고, 한일이 미래를 지향하면서 함께 전진하는 것이 소중하다”면서 “일본 경제계에서도 한일 정상과 각료 간의 대화가 조기에 재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회의에서는 한일 경제동향 및 전망, 상호 수출규제 폐지, 인적교류 확대를 위한 상호 무비자 입국제도 부활, 한국의 CPTPP 가입 필요성,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발전을 위한 한일 공동협력, 한미일 비즈니스 서밋 구성 등 한일 간 관심사에 대한 다양한 제안과 논의가 있었다.
양국 상공회의소 차원에서의 협력 재개도 추진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달 일본 도쿄를 찾아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을 만나 오는 11월 부산에서 한일 상의 회장단 회의를 여는 방안을 제안했다.
한일 상의는 2002년 이후 매년 양국을 오가며 개최했으나, 2018년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무역분쟁으로 중단된 이후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지난해까지 4년째 이뤄지지 못했었다.
최 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 당시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에게 서한을 보내 상의 회장단 회의 재개를 제안한 데 이어, 이번 일본 방문을 통해 구체적 일정까지 논의하며 한일 경제인간 교류 활성화에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SK그룹 회장이기도 한 최태원 회장은 지난달 일본 방문에서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회장, 시마다 아키라 NTT 사장, 사토 야스히로 전 미즈호그룹 회장 등을 만나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최종현학술원과 도쿄대가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 ‘도쿄 포럼’도 재개돼 양국 정‧재‧학계의 가교 역할을 다시 수행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핵심소재나 장비 측면에서 여전히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이 많은 데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 지정학적 리스크 등 최근의 돌발 요인까지 감안하면 한일간 협력 강화가 불가피하다”면서 “양국 정부의 움직임만 바라보고 있을 게 아니라 경제계에서 할 수 있는 부분부터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