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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위기 속 공격경영…정부 '실효적 규제개혁' 뒷받침 돼야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2.06.22 06:00
수정 2022.06.21 17:12

비상경영 속 공격적 미래 투자 배경은 정부 규제개혁에 대한 믿음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말고 실질적, 체계적 규제개혁 시스템 구축해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2022년 SK 확대경영회의’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SK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복합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민간 주도 혁신성장이라는 경제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규제개혁 등 후방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이런 움직임이 실효를 거두려면 좀 더 체계적인 규제개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어려운 대외환경에 대비해 비상경영체제 수립에 나섰다. SK그룹은 지난 17일 최태원 회장 주재로 2022년 확대경영회의를 열었고, 삼성전자는 21일부터 28일까지 부문별 글로벌전략회의를 진행한다.


LG그룹도 구광모 회장 주재로 지난달 30일 LG전자를 시작으로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등 계열사별 전략보고회의를 한 달 일정으로 진행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7월 정의선 회장이 권역별 사업 현황 및 전략을 점검하는 글로벌 권역본부장 회의를 열 예정이다.


기업들의 비상경영체제 수립은 대외 불확실성이 커질 때마다 있는 일이지만, 올해는 결이 다르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실적 악화와 유동성 위기를 고려한 방어적 대응보다는 대외 환경 변화 이후 시장 주도권 확보나 새로운 성장동력 모색을 위한 공세적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실제 삼성, SK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롯데그룹, 포스코그룹, 한화그룹, 현대중공업그룹, GS그룹, 두산그룹 등 주요 그룹사들이 지난달 발표한 국내외 투자계획은 도합 1000조원을 넘어선다.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충분한 경제 호황기에도 이정도 공격적 투자계획을 내놓은 전례는 없었다.


이처럼 기업들의 위기대응 전략이 공세적으로 바뀐 것은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경제정책 기조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외환경이 어려울 경우 기업들의 통상적인 대응 전략은 ‘복지부동’이다. 투자를 줄이고 현금성 자산을 비축해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넘기자는 것”이라며 “이런 스탠스에서 벗어나 미래를 대비한 투자에 나서는 것은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로 뒤가 든든해졌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갑작스런 규제폭탄에 대응하느라 경영전략을 전면 재검토할 우려가 사라지고, 나아가 기존 규제도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면서 좀 더 적극적 대응에 나설 여건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다만, 정부의 규제개혁이 단지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체계적이고 지속성 있는 규제개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규제개혁은 윤석열 정부 뿐 아니라 모든 정부에서 다뤄 왔던 화두다. 김영삼 정부의 행정쇄신위원회, 김대중 정부의 규제개혁위원회, 노무현 정부의 규제개혁기획단, 이명박 정부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장관회의, 문재인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 매 정부마다 규제개혁을 목적으로 설치, 운영한 조직이 있어왔지만, 기업들이 체감하는 규제의 양과 강도는 오히려 더 악화됐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한국경제와 사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규제개혁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규제는 기득권 산업을 보호하는 데 치중돼 있고, 칸막이-귀막이-눈가림 행정으로 점철됐다”면서 “섬세한 규제개혁 프로그램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 규제개혁위원회를 실질적이고 합리적으로 기능토록 하기 위해 공정위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대통령 소속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위원회의 역할로는 ▲규제영향분석 평가를 통한 규제 신설 통제 강화 ▲규제대안으로 포괄 규제를 스마트하게 변경 ▲규제정비계획의 세부 지침화 ▲규제신문고 적극 처리 및 과거 처리사항 모니터링 ▲일몰제 도래 규제 실질적인 심사 ▲규제총량제 적용 ▲규제특례법 시행과정 모니터링 ▲포괄적 사전전 규제 대폭 정비 ▲규제강도 모니터링 등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규제개혁 방안으로는 빅데이터, 바이오 규제, 공유경제 관련 개인정보보호 규제의 재구성, 민간의 자율과 창의성 보장 등이 필요하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SK하이닉스와 협력사 등이 10년간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곳을 짓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이 지난해 1월 착공 예정이었다가 다섯 차례나 연기된 사례를 대표적인 ‘덩어리 규제’의 사례로 꼽았다. 투자 지역인 용인이 수도권 공장 총량제 규제에 걸려 이 규제의 예외 사례로 인정하는 정부 심의에만 2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주요 덩어리 규제로 수도권 공장 총량제, 적합업종 규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대형마트 입지·영업 제한, 의료서비스 및 블록체인 규제 등을 꼽은 뒤 “이런 규제 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추진해 경쟁국에 없는 규제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영국의 규제비용 감축제, 미국의 규제총량 감축제(Two-for-one-Rule : 규제 1개 신설시 기존 2개 폐지), 호주 일몰제(10년 후 규제 효력 상실) 등 해외 규제개혁 제도를 벤치마킹해 양적‧질적 측면에서 효과적인 우리나라의 규제 감축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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