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 물어보니 ㊶] 의사 면허 회복, 이렇게 쉬웠나?
입력 2022.06.08 05:31
수정 2022.06.07 21:53
지인에게 약물 섞어 불법 투여…부작용 사망하자 한강공원 주차장에 사체 유기한 의사
징역형 확정 이후 복지부, 의사면허 취소…출소 후 면허 재교부 행정소송 제기
재판부 "복지부, 의사면허 재교부 거부하며 처분 근거 불기재…반성하고 있는 만큼 면허 회복"
법조계 “과실치사·사체유기 의료면허 취소와 무관, 마약류 위반도 3년 안 재교부…현행법 고쳐야"
지인에게 각종 약물을 섞어 불법 투여한 뒤 부작용으로 사망하자 시신을 유기해 의료 면허를 박탈당했던 의사에 대해 법원이 면허를 회복시키라고 판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법조계는 업무상과실치사나 사체유기는 의료면허 취소와 전혀 관련이 없고, 마약류관리법위반의 경우도 면허 취소 후 3년 안에 재교부가 가능하다면서 현행법에 문제가 있는 만큼 국민들의 법 감정에 맞게 면허 재교부 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전직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면허 재교부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원고 승소로 지난 4월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서울의 한 산부인과 원장으로 재직하던 2012년 2월 14일 지인 B씨에게 프로포폴 등 13개의 약물을 섞어 불법 투여했다. 이후 B씨는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호흡 정지로 인해 사망했고, A씨는 B씨의 시신을 차량에 실어 한강공원 주차장에 유기했다.
이후 A씨는 의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또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지인에게 몰래 빼돌린 프로포폴을 세 차례 투약했던 사실도 드러나 2013년 6월 징역 1년 6개월, 벌금 300만원 형을 확정받았다. 복지부는 2014년 7월 A씨의 의사 면허를 취소했다.
A씨는 출소 후 면허 재교부 제한 기간 3년이 지난 2017년 8월 “의사 면허를 재교부해달라”고 복지부에 신청했다. 복지부가 이를 거부하자, 그는 2021년 3월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복지부가 A씨의 의사면허 재교부를 거부하며 처분 근거 등을 기재하지 않았고, A씨가 자신의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면허 회복의 길을 열어줬다.
재판부는 “중대한 과오를 범했지만 개전(改悛)의 정이 뚜렷한 의료인에게 한 번 더 재기의 기회를 줘 자신의 의료기술이 필요한 현장에서 봉사할 기회를 주는 것이 의료법 취지와 공익에 부합한다”며 “원고가 10년 가까이 의사로 봉직하지 못해 의료기기 판매업 등을 전전하는 등 많은 후회와 참회의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형량 문제 및 면허 재교부 기준 지적한 법조계
그러나 법조계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우리나라 의료법이 문제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허위진단서 작성 등 형법상 직무 관련 범죄와 보건의료 관련 고의 범죄’ 등 제한적으로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A씨 사건처럼 업무상과실치사 등 과실에 의한 범죄나 사체유기와 같이 직무와 무관한 범죄일 경우 면허 취소 사유가 되지 않는다.
이은의 변호사(이은의 법률사무소)는 “(A씨가) 고의로 살인 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고 시체도 유기했다”며 “프로포폴도 빼돌려 마약류관리법도 위반했는데, 징역이 1년 6개월만 나왔다. 이것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또한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에 대한 형사처벌 이력에 대해선 복지부가 면허 재교부 기간을 확장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사건은 우리나라 형사법 양형이나 관련 법규의 공백·기준부터 따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의료법 전문 이동찬 변호사는 “의사 면허증의 경우 복지부 장관이 재교부 여부를 판단한다”며 “의료 면허 취소 후 재교부는 가장 긴 것이 3년인데 마약류관리법위반의 경우가 해당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법에 아직 논란이 있는 부분인데, 업무상과실치사나 사체유기는 의료 면허 취소와 전혀 관계가 없다”며 “국민들의 법 감정을 살펴보면, 취소 사유를 넓히고 취소된 이후에 재교부하는 것을 더욱 까다롭게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