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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물어보니 ㊲] '유령 대리수술', 상해치사 혐의 적용해야

박찬제 기자 (pcjay@dailian.co.kr)
입력 2022.05.20 05:09
수정 2022.05.20 17:26

의료면허 없는 간호조무사나 의료기기 영원사원도 수술대에 서는 '유령수술'

법조계 "보통 의료인력 수급 어렵거나 수술실 마련돼 있는 지방·개인병원서 빈번하게 발생"

"업무상과실치사 적용되면 가중 처벌돼도 최대 3년…상해치사,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

"사람 신체에 칼 대며 벌어지는 사건들, 당연히 '상해'나 '상해치사'…검찰 더 엄격한 잣대로 기소해야"

의료사고로 사망한 권대희씨의 어머니가 지난해 9월 기자회견을 열어 권씨를 수술한 성형외과 원장 장모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하라고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과다출혈 증세를 보이는 환자를 방치하고 간호조무사에게 지혈을 맡겨 사망하게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 등으로 기소된 성형외과 원장 장모(53)씨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19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양경승 부장판사)에서 열렸다. 장씨는 항소심에서도 징역 3년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리 수술을 하면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도 흔하게 생길 수 있는 만큼 검찰이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더욱 엄격한 잣대로 기소했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씨는 지난 2016년 9월 사각턱 절개수술을 받던 권대희씨의 수술을 맡은 집도의였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환자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었지만, 과다출혈 증세를 보이는 권씨의 지혈을 의료면허가 없는 간호조무사 전모씨에게 맡겨 놓고 다른 수술실로 떠났다. 30분간 간호조무사가 권씨를 지혈했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권씨는 끝내 사망했고 장씨 등은 2019년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사건처럼 환자가 마취된 뒤 의료면허가 없는 간호조무사 등이 의료행위를 하다가 발생하는 사고를 두고 '유령수술' 혹은 '유령 대리수술'이라고 부른다. 빈번한 사례는 아니지만 의료기기 영업 사원이 수술대에 서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술실 4개 만들고 돌아가며 동시에 수술


장씨가 운영한 병원은 이른바 '공장식 수술실'을 운영했다. 병원에 수술실 4개를 만들고 마취·절개·세척·봉합을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환자들의 수술을 진행한 것이다. 이때문에 장씨는 과다출혈 증세를 보이는 권씨에게 자신이 직접 조치를 취하는 게 아니라 수술실에 있던 간호조무사 전모씨에게 지혈을 맡기고 다른 수술실로 떠났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한 환자에게 전념할 수 없는 구조"라며 "봉합 과정에서 과다출혈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제대로 못 살펴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을 놓쳐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장씨 등은 재판 과정에서 전씨의 지혈이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출혈 부위를 단순히 손으로 누르는 동작 자체는 쉽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맞다"면서도 "환자가 마취 상태였다는 점과 출혈이 심각한데 간호조무사 혼자서 지혈 행위를 했다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질타했다.


또한 당시 의학전문대학원을 갓 졸업했던 동료 의사 신모씨에게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신씨는 권씨의 출혈이 상당했음에도 장씨 등과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점이 유죄로 판단됐다. 아울러 장씨와 함께 기소된 전씨와 마취의 이모씨에겐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에 벌금 500만원과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법조계 "'업무상과실치사' 아닌 '상해치사' 혐의 적용해야"


법조계에선 이 같은 유령 대리수술이 대도시 보다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인 정이원(법률사무소 이원) 변호사는 "이런 불법 대리수술이 일어나는 곳은 의료인력 수급이 어려운 지방이나 수술실이 마련된 개인병원 등이 많다"며 "개인병원의 경우 충분한 의료 인력을 구하기엔 수입이 모자라고, 지방의 경우 의료 면허가 있는 인력 자체를 구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대희씨 사망 사고는 굉장히 드문 사례"라며 "(장씨 등이) 의료법 등을 가볍게 보고 악용한 걸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유령 대리수술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어떤 혐의를 적용하느냐'이다. 법조계에선 '업무상과실치사'가 아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리수술 자체가 실수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법 제258조 1항(중상해·존속 중상해)에 따르면,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반면 업무상과실치사죄는 가중 처벌이 되더라도 최대 3년에 그친다. 대법원 양영위원회에 따르면,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죄는 기본 형량이 징역 8개월~2년이고, 가중 처벌이 될 경우 징역 1년~3년으로 늘어난다. 감경된다면 4개월~10개월 정도가 선고된다.


원곡 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사람 신체에 칼을 대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인데 검찰이 왜 '상해'나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며 "(대리 수술을 하면서) '잘못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텐데, 검찰이 더 엄격한 잣대로 기소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은 장씨에게 7년6개월을 구형했는데, 재판은 업무상과실치사로 넘겨놓고 왜 형량만 상해에 걸맞게 요청하는가"라고 꼬집고 "혐의에 따라 기본적인 양형 조건이 있는데, 판사가 어떻게 7년을 선고할 수 있겠나"라고 힐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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