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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물어보니 ㊳] 가스라이팅·흉기 살해 '여대생'…왜 '특수상해' 무죄?

박찬제 기자 (pcjay@dailian.co.kr)
입력 2022.05.27 05:14
수정 2022.07.08 13:36

피고인, 피해자 야구방망이·금속제 커튼 봉으로 폭행…가위로 수십회 찌르기도

1심 재판부 살인죄·특수상해 모두 유죄 판단…2심 재판부 특수상해 무죄 판결

"살인 고의성 성립 이전의 상해 행위도 특수상해지만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판단 어려워"

법조계 "특수상해가 살인죄와 별도로 인정되려면 검찰에서 제대로 혐의 입증했어야"

부산 법원 모습. ⓒ연합뉴스

이른바 '가스라이팅'으로 남자친구를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날카로운 흉기 등을 이용해 육체적 학대를 자행하다가 둔기로 내려쳐 살해한 20대 여성 A씨가 '특수상해' 혐의를 벗고 감형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원래 특수상해와 살인죄가 함께 유죄로 나오기가 힘들다면서도, 검찰의 수사가 미흡했던 게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고법 형사2부(오현규 부장판사)는 살인 및 특수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살해 과정에서의 상해 행위는 별도 범죄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남자친구와 동거하면서 잔혹한 폭행 시작…정신적으로도 주종관계


데일리안이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A씨는 지난 2020년 4월 20일 부산의 한 대학교 야구 동아리에 가입하며 피해자 B씨와 처음 친분을 맺었다. 이후 연인 관계로 발전한 이들은 그해 6월부터 A씨의 오피스텔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A씨는 B씨와 동거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육체적·정서적 폭행을 일삼았다. A씨의 폭행으로 B씨는 얼굴 전체에 멍이 들었고, 머리 부위 대부분이 찢기는 등 최대 길이 9cm의 자상도 입었다.


B씨는 결국 지속적이고 극심한 폭력으로 인해 정상적인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A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B씨를 가족에게 인계하거나 병원 치료를 받게 하는 등의 후속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B씨가 사망하게 된 결정적 계기 역시 A씨의 폭행 때문이었다. 심각한 폭행으로 혼자서 거동을 못하게 된 B씨는 2020년 11월 10일 오후 11시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바닥에 배설물을 흘렸고, 다음날 이를 목격한 A씨는 화를 내며 B씨를 수차례 가격했다. B씨는 이전의 폭행으로 입었던 상처와 이 폭행으로 인해 외상성 쇼크가 일어나 사망했다.


B씨는 특히 A씨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돼 있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B씨의 휴대전화에는 '(A씨가) 깨워달라고 하실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깨워드릴 것' '어떤 일이라도 여보의 일이 우선이기에 정신 차려서 행동하기, 안 그러면 전 남친과 연락(할 수도)'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1심 재판부 "피해자, 피고 주도 일방적 관계에 종속"…2심 재판부 "살인죄만 적용"


A씨는 법정에서 "B씨는 피학적 성행위를 즐기는 마조히스트였다"며 "몸에 난 상처들은 대부분 B씨가 자해한 것"이라는 취지로 항변했으나, 1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오히려 "피고인의 휴대전화 영상을 보면 피고인이 주도적으로 B씨에게 성행위를 시키는 장면이 확인된다"며 "피해자는 A씨가 주도한 일방적인 관계에 종속돼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살인 및 특수상해 혐의로 A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A씨가 B씨를 폭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고의성이 있었다고 봤으며, B씨가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아는 상태에서도 계속 폭행을 가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A씨가 입힌 지속적 상해행위 가운데 일부는 살인의 고의가 성립한 전후 모두에 있었던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살인의 고의가 성립한 후에 발생한 상해행위는 포괄적으로 평가할 때 살인행위에 흡수되는 관계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살인에 대한 고의성이 성립하기 이전의 상해 행위도 특수상해로 볼 여지가 있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며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공소사실은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2심 재판부는 A씨에게 살인죄만 적용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살인죄와 특수상해를 모두 유죄로 판단한 1심보다 10년 감형한 것이다.


법조계 대부분은 검찰의 수사가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김기윤 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상해를 입힌 기간을 A, B구간으로 나눴을 때, 판사가 B구간은 특수상해 혐의와 살인 혐의를 병합해 처리한 것"이라며 "B구간 전에 있었던 특수상해에 대해서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로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무죄로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사망하던 날 발생한 특수상해는 살인죄와 병합될 수 있고, 그 이전에 있었던 특수상해는 별개의 혐의로 기소돼 각각 유죄가 나올 수 있다"며 "그런데 특수상해가 무죄로 나왔다면 검사가 이 부분에 대해 유죄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출신인 이헌 변호사는 A씨가 흉기 등으로 입힌 부상이 B씨의 사망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재판부가 살인죄만 유죄로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부는 흉기를 사용한 폭행이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일련의 경과나 과정으로 본 것 같다"며 "특수상해가 살인죄와 별도로 인정이 되려면 검찰에서 혐의를 잘 입증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잘못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또 피해자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살인죄 외에 특수상해 혐의를 별도로 유죄라고 판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피해자가 입은 구체적 부상 경위가 적시됐다면, 특수상해가 무죄라고 하더라도 살인죄에 대한 형량을 정할 때 이런 부분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른 의견도 있었다. 형사법 전문인 임광훈 변호사는 2심에서 특수상해가 무죄로 판결된 것이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가 사망하기 훨씬 이전부터 피고인이 가위로 피해자의 어깨와 무릎을 수십회 찔러 연골이 드러나게 만들었다"며 "피해자가 사망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행위까지 (재판부가) 살인의 고의라고 판단한 것인데, 살인죄와 별도의 행위(범죄)라고 판단하지 않은 것은 의문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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