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무능 드러낸 지난해 초과세수 오류…정보 독점 욕심 버려야
입력 2022.05.24 14:55
수정 2022.05.24 15:53
1년 사이 4차례 정정, 액수만 100조원 넘어
제도 개편 ‘실패’…전·현직 부총리 거듭 사과
“정보 공개하고 민간 전문가 참여 필요해”
“세수 예측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큰 규모의 초과 세수가 발생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지난해 세수 예측에 큰 오차가 났고 이번에 다시 추계해보니 당초 예산 편성보다 초과세수가 큰 폭으로 더 들어올 것으로 분석됐다. 기재부도 많이 반성하고 무겁게 받아들인다.”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전·현직 부총리가 같은 사안을 놓고 사과를 반복하게 만든 초과세수 문제가 국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제도 개편안을 내놓은 지 두 달여 만에 똑같은 문제가 재발하면서 기재부가 사실상 세수 추계에 무능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그동안 기재부가 사실상 독점하던 관련 정보를 공개해 민간 전문가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재부는 지난달 59조4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안을 편성하면서 올해 53조3000억원의 초과세수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예산안 편성 때 예상하지 못한 세금이 53조3000억원이나 더 들어온다는 의미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기재부가 초과세수를 의도적으로 숨겨온 것 아니냐며 ‘재정 쿠데타’라는 표현까지 쓰며 반발하고 있다.
재정 쿠데타라는 민주당 표현이 과할지 몰라도 기재부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지난 1년 사이 여러 차례에 걸쳐 100조원이 넘는 재정 추계 오류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최소한 무능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기재부는 지난해 7월 2021년 세수 수입을 282조7000억 원으로 예상했다가 31조6000억원의 초과 세입이 예상된다며 세수 추계를 정정했다. 4개월 뒤인 11월에는 19조원 정도 세수가 늘어날 것 같다며 다시 바꿨다. 추계 오차 금액만 50조원이 넘었다. 정치권의 날선 비판에 당시 홍남기 부총리는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런데 기재부는 올해 1월 ‘월간 재정동향 및 이슈’를 발표하며 7조8000억원 이상 세입이 늘어날 것으로 추계를 새로 고쳤다. 앞서 수정한 것과 합산하면 무려 60조원 가까운 세수를 잘못 계산한 셈이다. 홍 전 부총리는 국회에서 세수 추계 오류에 관해 재차 사과했다.
부총리의 두 번 사과에도 기재부의 세수 예측 실패는 끝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고 지난달 새 정부가 2차 추경안을 발표하면서 53조3000억원의 초과세수가 발생했다. ‘역대급’ 규모다. 초과세수 덕분에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약속했던 50조원 규모 추경을 실행할 수 있었으나 취임 한 달도 안 된 추경호 부총리는 국회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사과해야 했다.
기재부는 초과세수 오류 문제가 커지자 지난 1월 세제실을 물갈이했다. 당시 김태주 세제실장 후임으로 윤태식 국제관리관을 임명했는데 세제실은 내부 승진이 관례였던 것에 비춰봤을 때 사실상 문책성 인사라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 2월에는 ‘세수오차 원인분석 및 세제 업무 개선방안’도 내놓았다. 기재부는 현행 추계시스템이 ▲추계모형의 한계 ▲의사결정 프로세스 문제 ▲이상징후 대응체계 미흡 ▲사후평가·피드백 부족 등의 한계를 노출했다며 세수추계 공식(메커니즘)을 ▲모형설계 ▲추계절차 ▲세수점검 ▲사후평가 등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직과 제도를 모두 바꾼 지 두 달여 만에 다시 53조원이 넘는 세수 오차가 다시 발생하면서 기재부는 체면을 구기게 됐다.
전문가들은 연이은 초과세수 예측 실패를 기재부의 무능에서 기인한다고 꼬집는다. 세수 추계 관련 자료를 사실상 독점하면서 내부 공무원들의 분석과 판단에만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세수 추계 오류의 근본 원인은 세입 징수 내역과 세수 추계 시뮬레이션 방안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며 “기재부가 모든 자료를 틀어쥐고 공개하지 않고 있어 (민간이) 제대로 전망치를 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일 세입 내역은 국세청을 통해 이미 집계되고 있는 것인데 정부는 세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 “세입 내역을 공개해서 민간 연구소들이 이를 활용해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러한 예측 실패도 없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도 같은 의견이다. 정 소장은 “현재 가장 문제는 세수추계를 전문성이 떨어지는 직업공무원들이 한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정보를 독점하며 민간보다 앞서간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투명하게 공개하고 전문가를 참여시켜 데이터를 축적하고 공개검증하는 방식으로 오류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복되는 세수 추계 오류에 대해 기재부가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며 “지금 기재부는 법인세만 30조 이상 걷힌다고 예상하는데, 실제로 그 정도로 더 걷힐지 의문이다. 먼저 세수 추계 과정부터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