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株가 기회의 장인가? [황인욱의 체크]
입력 2022.05.24 07:00
수정 2022.05.24 05:05
횡령 변수·투자 레버리지 수단 이용
당국 '수수방관'…증시 도덕성 추락
"30억원은 이제 커보이지도 않는다."
최근에 만난 한 증권사 임원이 아모레퍼시픽 직원 횡령 사건을 보고 꺼낸 말이다. 연초부터 상식 밖 규모의 횡령 사건이 연달아 터지다보니 시장도 충격에 무감각해지고 있음을 빗댄 말이리라.
그는 대화 중에 횡령 발생 종목이 '테마주'가 되는 상황을 개탄했다. 실제로 '횡령주'의 주가는 단기간 급락한 이후 투기성 자금이 대거 몰리고 있는 것이 관측된다.
개인은 5월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아모레퍼시픽과 우리금융지주를 각각 1163억원, 655억원어치 사들였고, 코스닥 시장에서도 오스템임플란트(471억원)를 가장 많이 순매수 했다.
횡령 변수가 투자 레버리지의 수단이 되다 보니 시장의 도덕성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런데 시장 도덕성 추락의 책임을 매집 주체인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 적절한지는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점 매수는 흔한 투자 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은 시장을 흔들 힘도 부족하다. 횡령 발생 종목들의 주가가 저점과 비교해 올라오고는 있다지만 일별로 보면 아직 롤러코스터 흐름이다. 변동성 확대시 투자 손실 확대 우려도 나온다.
결국, 시장의 도덕성을 떨어뜨린 1차적 원인은 당국에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횡령 사태 발생 이후에도 금융당국의 역할이 '전무'하며 시장의 각종 변수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련의 횡령 사건을 개별 직원들의 일탈로 돌릴 수 없다고 지적하며 "횡령이 가능한 구조가 만연하지 않는데 개별 회사에서 유행처럼 번질 수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당국의 외부감시 체계가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횡령 공시규정이 느슨해 투자자들의 피해를 더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발생한 횡령 건에 대해 횡령금액이 자기 자본의 5% 이상이 안 돼 의무공시사항이 아닌 만큼 따로 공시하지 않았다. 규정대로 했다지만 주가 급락 등이 뒤따라 오며 결국 피해는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입었다. 이후 당국의 마땅한 사후 대처도 없어 횡령 발생 종목의 주가 급락과 투기판 형성을 '수수방관' 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로 신뢰성 회복을 꼽고 있다. 최근 증시에서 자본 이탈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자본시장 질서 확립과 투자자 보호 강화 없이 시장의 성장은 요원하다. 신뢰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시장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당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