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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㉘] 반전의 정석, 오션스 일레븐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2.04.03 07:31 수정 2022.04.03 07:31

오션스 일레븐의 수장 '대니 오션' 역의 조지 클루니 ⓒ이하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모든 영화에 반전이 필요한 건 아니다. ‘범죄의 재구성’(2004)은 이야기의 짜임새와 흐름이 중요하고, 맛깔난 대사와 몸짓의 배우들이면 충분했다. 최동훈 감독이 촘촘히 직조한 다채로운 빛깔의 천에서는 윤기가 흘렀다.


그런데, 반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영화에서든 크고 작은 반전을 만나면 오지게 재미있다. 특히나 역대급 반전일 때는 두말 할 나위 없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감독 브라이언 싱어, 1995)의 반전, 범인의 정체가 안겨 준 놀라움은 최고였다. 이보다 더한 반전은 없다고 생각했던 단정을 보기 좋게 깨뜨린 영화가 있었으니 ‘식스 센스’(감독 M. 나이트 샤말란, 1999)이다. 범인이 누구냐 정도가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헷갈리게 한 존재론적 정체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글을 적다 보니, 아동 심리학자로 분해 차분하고도 섬세한 감성 연기로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던 ‘식스 센스’의 브루스 윌리스가 실어증으로 배우 생활을 은퇴한 비보가 떠오른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쾌유를 기원함과 동시에 이기적 관객으로서 다시는 그의 새로운 연기를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이제 겨우 67세다. 기적을 바라면 과한 소망일까.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카이저 소제를 신보다 두렵다고 말했던, 물 샐 틈 없는 호연으로 우리의 불안과 혼란을 가중했던 딘 키튼 역의 가브리엘 번이 주연한 HBO 드라마 ‘인 트리트먼트’도 생각난다. 브루스 윌리스보다 다섯 살이 많은 가브리엘 번은 심리상담 전문 정신과 의사가 되어 어느새 시즌4까지 모노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힘으로 작품 자체를 책임지고 있다. 웨이브(wavve)에서 볼 수 있는데, 사라지기 전에 봐야 하는 명작으로 추천하며 ‘삼천포’에서 본론으로 돌아 나와야겠다.


공격하는 자(칼 라이너 분) VS 방어하는 자(앤디 가르시아 분, 왼쪽) ⓒ

반전 얘기를 하고 있었다. 취향 차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비밀을 철저히 숨긴 ‘서프라이즈형’ 반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눈치챌 정보를 주지 않고 있다가 ‘짜잔’ 들이미는 반전은 재미보다 짜증이 앞선다. 반전을 마주할 땐 허점을 찔린 듯 ‘앗!’ 놀라움이 앞서지만, 곧이어 ‘맞네, 사전 포석들이 있었네’ 하며 감독이 깔아놓았던 밑밥들이 떠오르는 쾌감의 반전을 좋아한다.


얼마나 자신 있으면 반전에 다다를 수 있는 징검다리 돌들을 놓았을까. 분명 돌이 있기는 하되 흐르는 물살에 보이지 않게 적당한 깊이와 간격으로 돌을 놓은 감독 역시 관객이 너무 일찍 눈치챌까 떨렸을 것이고, 일종의 심리 게임을 우리는 감독과 한 것이다. 그런 만든 이와 보는 이가 서로 느끼는 긴장, 끝내 드러나는 반전이 주는 쾌감을 맛본 지 오래다.


제작비는 커지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재미도 감동도 설렘도 만들어 낼 수 있고 관객은 그 의도에 맞춰 반응할 것이라고 믿는 기획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이니 반전의 부재는 당연한지 모르겠다. 영화가 창의성을 잃어가는 것과 반대로 관객의 눈은 점점 높아져서 반전이라고 기획해야 통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종종 옛날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되는데 시공간의 벽을 낮춘 OTT(인터넷TV) 덕에, 또 잘 만들어진 명작들 덕에 ‘마치 처음 접하는’ 반전인 것처럼 즐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무뎌진 두뇌와 기억력이 반전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즐거움도 있다.


영화 포스터 ⓒ

영화 ‘오션스 일레븐’(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2001)도 그중 하나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초대형 카지노 세 곳의 돈이 모이는 지하 금고를 터는 이야기로. ‘범죄의 재구성’과 마찬가지로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 분)이 자신 외 10명의 각 분야 ‘기술자’들을 집결시켜 ‘오션의 11명’ 팀을 완성해가는 과정만 해도 재미있고. 금고털이를 계획하고 리허설 하고 실행하는 장면들만 해도 맥박이 빨라지고.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앤디 가르시아, 줄리아 로버츠, 돈 치들 등의 배우를 한 영화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신난다.


그런데도 반전이 있다. 결코 감독의 자기만족형, ‘깜짝형’ 반전도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30분쯤 됐을 때 11명 가운데 최고령이자 베테랑 사기꾼인 사울(칼 라이너 분)이 대니에게 묻는다.


사울: 어쨌든 그걸(핵무기 절도 급의 온갖 보안장치와 무장 경비인력 등) 다 통과한들 1억 5천만 달러를 들고 거기를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대니: (11명 전원의 침묵이 흐른 뒤) 네


사울: 아, 오케이.


관객은 짐작할 수 있다. 아, 이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겠구나! 그런데 영화 말미, 드디어 산 넘고 물 건너 ‘난공불락’이라는 베네딕트 회장(앤디 가르시아 분)의 금고가 열린 뒤, 돈을 밖으로 빼내는 방법이 등장하는데. 조금 실망스럽다. 현장 지휘자 격인 러스티(브래드 피트 분)가 제아무리 카드게임의 달인이라지만 베네딕트에게 도박을 건다.


금고에 있는 돈은 1억 6315만 6759달러. 러스티는 돈을 8천만 달러만 가지고 나가고 나머지 절반에는 폭탄을 설치할 것이며, 돈을 가지고 나가게 두면 아무도 몰래 8천만 달러만 잃을 것이고 막아서면 공개적 망신과 함께 1억 6천만 달러를 잃게 될 거라고 말한다. 이런 어이없는 협박이 통한다. 진짜? 이게 기대를 키운 결말이라고? 실망이 성급했다.


베네틱트에게도 계획이 있다. 돈을 들고 나가게 해주지만 결국 추격해 낚아챈다. 그러나 돈 가방에 든 것도, 금고에 남아있던 것도 모두 종이 쪼가리다. 역시! 그럼 그렇지! 엇, 그럼 어떻게 진짜 돈을, 그것도 1억 6315만 6759달러 전체를 훔친 거지? 감독이 해답을 화면에 띄우기 전에 얼른 먼저 맞춰야지 하며 흥미진진 추리 게임에 나서려 하는데,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정답을 이미 공개한다. 에잇, 맞출 수 있었는데!


배우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앨리어트 굴드, 돈 치들(왼쪽부터) ⓒ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삐칠 이유는 없다. 사실 그리 오래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없는, 엄청난 반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되레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면, 감독 스스로 대단한 반전으로 착각한 것인데 스티븐 소더버그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역대급 반전도 아닌데, 반전의 정석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최소한의 기준이다. 이만큼 정도의 반전이라도 맛보고 싶은 기대다. 영화는 분명 반전의 비밀을 ‘꽁꽁’ 숨기지 않고 빈 괄호(‘네’라는 짧은 대답 한마디)로 예고했다. 후킹, 절반만 훔친다는 낚시질을 했고 우리는 낚였다. 낚시용 떡밥이 너무 그럴듯해서 이대로 영화가 끝나는 것인 줄 알게 해 놓고 ‘진짜 결말’을 준비해 놨다면 관객에 대한 배신이고 우롱이다. 그러나 적당히 실망스럽게 해서 ‘또 다른’ 결말의 존재를 눈치채게 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이대로 끝은 아니리라는 짐작을 가능케 했다. 반전의 강도가 세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감독 혼자 내달리지 않고 관객과 손잡고 함께 도달한 결말이었다.


사실 ‘오션스 일레븐’의 가장 큰 반전은 굳이 반전이 없어도 재미있는 영화에 설정해 놓은 귀엽고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반전이었다. 낚고 낚이고, 낚였음을 깨달은 순간 관객을 풀어 주었다. 짧은 순간에 이뤄진 심리 게임, 감독과의 승부에서 어렵지 않은 승리를 놓치니 더 짜릿한 반전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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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raB 2022.04.11  05:51
    기자님, 인 트리트먼트의 주인공 폴 웨스턴(가브리엘 번 분)은 정신과 의사가 아닙니다. 시즌2 에피소드1에 자세히 나오는데 그는 M.D.가 없어요. 위키피디아에도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psychologist and psychotherapist)라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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