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 똑바로 하세요!"…박범계-윤석열 '질긴 악연' 어디까지?
입력 2022.03.26 06:17
수정 2022.03.26 20:36
"석열이 형!" 호의에서 "자세 똑바로!" 호통…'검찰 권한' 놓고 대립각
박범계, 2024년 5월까지 의원직 유지…'반윤(反尹)' 선봉장 자처하나
법조계 "정치인 복귀시 정치적 입지 고려해 수사권 박탈 더 세게 추진할 듯"
"대장동 특검 발동하고 퇴임할 가능성…민주당, 윤석열 몸통이라고 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검찰 권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법무부 업무보고 '퇴짜 사태'로 두 사람 간의 오랜 악연이 다시 재조명된 가운데, 박 장관은 퇴임 이후에도 야당 정치인으로서 윤 당선인과 대립관계를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윤 당선인과 박 장관이 처음부터 악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2013년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박 장관은 여주지청장이던 윤 당선인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중 징계를 받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형! 형을 의로운 검사로 칭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검찰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 형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정한 검사가 될 것을 지켰을 뿐"이라고 적으며 윤 당선인을 응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 추진 과정에서 양측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재작년 10월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 당시 박 의원은 검찰의 권한 남용 사례를 지적하며 윤 총장을 몰아세웠고 "자세를 똑바로 하라!"며 크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박 의원의 호통이 계속되자 윤 총장은 "과거엔 저에 대해 안 그러셨지 않느냐"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러다 박 의원은 '검찰개혁 완수'를 과제로 부여받고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검찰 수사권을 제한하려는 박 장관과 이를 저지하려는 윤 총장의 정면충돌은 불가피했고, 결국 윤 총장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 (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할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지난해 3월 전격 사퇴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윤 전 총장이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악연은 다시 이어졌다. 박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등 윤 당선인의 검찰 독립성 강화 공약을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이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무례하고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난하며 다음날 예정된 법무부 업무보고를 전격 유예했다.
인수위는 유예 조치에 대해 "당선인의 의지와는 관계없다. 전적으로 인수위원들이 협의해서 결정한 것"이라며 윤 당선인의 사적인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다만 법조계는 박 장관과 윤 당선인의 오랜 대립관계가 초강경 조치가 발동된 배경이 된 것으로 볼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 부회장인 이헌 변호사는 "박 장관은 코로나19 자가격리를 마치자마자 이례적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약 반대 의사를 밝혔다"며 "인수위원들은 박 장관이 윤 당선인의 체면과 위신에 의도적으로 손상을 입히려 했다고 보고 대응방안을 강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박 장관의 향후 행보다. 그동안 검찰권한 축소에 주력해온 박 장관은 체면상 검찰 독립성 강화 공약에 전면 협조하긴 어려운 입장이다.
특히 박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겸직하고 있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임기는 2024년 5월까지로 2년 넘게 남아있다. 의원 시절 '공격수'로 이름을 떨쳤던 박 장관은 퇴임 뒤 윤 당선인과 정권의 법무 정책을 적극적으로 견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사회정의를바라는전국교수모임(정교모) 공동대표인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는 "퇴임까지 겨우 40여일 남겨둔 박 장관이 굳이 거취표명에 나설 이유는 없는 듯 하다"며 "윤석열의 검찰권 강화 공약에 끝까지 맞선 상징적 존재로 남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입지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어 "정치인으로 돌아간 박 장관은 지금보다 더욱 거세게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밀어붙일 것"이라며 "그것이 정치적으로 가장 유리한 방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이헌 변호사는 "최근 박 장관이 대장동 특검의 필요성을 언급한 점에 비춰, 상설특검법을 통해 직권으로 특검을 발동해놓고 퇴임할 가능성도 있다"며 "특검이 개시되면 수사 결과를 발표해야만 하고, 설령 후임 법무부 장관이 이를 철회하려 해도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박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장동 의혹 관련해 "상설 특검이나 개별 특검으로 조속히 논쟁을 종결시킬 필요가 있다"고 언급해 법조계를 술렁이게 했다. 그동안 특검 도입론을 일축하던 박 장관이 정권교체를 앞두고 돌연 입장을 선회한 까닭에 의문이 제기된 대목이다.
이 변호사는 "민주당은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의 몸통이 윤 당선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다"며 "민주당이 이런 사안들을 가지고 반격전에 나설 때 박 장관이 선봉을 자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