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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낙태약, 암시장서 수십만원에 거래"…낙태죄 폐지 후속 입법은 도대체 언제?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입력 2022.03.20 06:43
수정 2022.03.16 21:38

방심위 '낙태약' 홈페이지 차단에 시민단체 행정소송…"정보접근권·재생산권 침해"

지난해 1월 1일 낙태죄 사라졌지만 대체 입법 공전…'낙태 허용 주수' 최대 쟁점

낙태약 먹고 출산 아기 사망케한 부부, 법 없어 살인죄 혐의…약물 이용 임신중절은 현재도 '불법'

전문가 "뒷받침 법률 근거 만들지 못하는 국회, 직무 유기…임신 중단 필요 여성과 태아 보호 시급"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되자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기뻐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된 지 1년이 넘었지만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현장 곳곳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 여성과 시민단체는 '먹는 낙태약'을 거래하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웹사이트를 허용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하고, 의료계에서는 후속 입법이 없어 '영아 살해'와 '낙태' 기준까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조속히 대체 입법이 마련돼 임신 중단이 필요한 여성들과 태아를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단법인 오픈넷과 국제위민온웹국제재단 등 시민단체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약사법을 위반한다며 '위민온웹'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하는 조치를 하자 이를 취소해달라며 지난 11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위민온웹'은 임신중절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임신중절 약물 배송을 하는 국제비영리단체이고, 방심위는 현행법상 약사가 아닌 사람은 약을 배포할 수 없다며 지난해 12월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했다.


이들 단체는 1년 넘게 이어지는 법적 공백 상태에서 이런 조치가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들의 정보접근권, 재생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월 1일부로 낙태죄 효력이 끝났지만 현재까지 관련 후속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임신중절 수술은 불법이 아니지만,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절은 불법인 상황이다.


오경미 오픈넷 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는 낙태약을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지만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들의 수요는 높아 암시장에서 한 알에 수십만원씩 거래되고 있다"며 "홈페이지 접근 자체가 막혀 버리면 여성들은 암시장에서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수술을 해줄 수 있는 병원을 힘겹게 찾거나 수술비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낙태죄가 폐지됐음에도 임신 중단을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더 나은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입법이 부재한 상황에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정해지지 않아 어느 주수까지 임신중절을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도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홍순철 고려대 산부인과 교수는 "헌법재판소는 낙태 허용 기준을 최대 임신 22주까지 봤지만 산부인과 학회에서는 최대 10주까지 보고 있어 기준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 낙태약을 먹고 출산한 32주된 아기를 사망케한 부부의 경우도 법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낙태죄로 처벌되지 않고 오히려 살인죄 혐의를 받고 있다"며 "법이 없으니 낙태죄가 아예 폐지된 줄 알고 이런 비극도 일어나는 것이다. 10주든, 20주든 합의를 통해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후속 법안들이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모두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16일 기준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낙태 관련 형법 개정안과 이를 뒷받침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모두 13개다. 임신 10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20주까지는 여성, 태아의 건강상 중대 이유가 있으면 제한적으로 허용하자는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안을 비롯해 최대 임신 10주까지 허용하자는 서인숙 국민의힘 의원안, 임신 주수 제한을 두지 않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등이 상임위 문턱에서 잠자고 있다.


현재 이들 안들이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낙태 허용 주수를 놓고 종교계, 여성계, 의료계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 의원실 관계자는 "각계를 반영해 만들어진 정부안, 여당안, 야당안들이 각자 쟁점이 치열해 상임위인 법사위, 보건복지위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멈춰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헌법재판소가 낙태 권리를 인정했음에도 국회가 이를 뒷받침할 법률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이러는 사이 임신 중단이 필요한 여성들은 신체적, 경제적 안전에서 멀어지게 되는데, 논의조차 멈춘 상황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고 비판했다.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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