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권, 왜 실패했나] ④ 외유인 듯 외유 아닌 외유 같은 순방
입력 2022.02.05 00:00
수정 2022.02.05 07:36
文 "외교의 비중 이리 큰지 몰랐다"
"국내 문제 질문 안 받겠다"며 '올인'
그런데도 정작 외교 성과는 불분명
외유 논란 휩싸이고 남남갈등 촉발
정권교체 여론이 국민 과반을 넘나들고 있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지난달 29일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3·9 대선에서 야당 후보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응답은 54.4%, 여당 후보로 정권재창출을 해야 한다는 응답은 38.2%였다.
헤럴드경제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2~3일 실시한 설문에서도 정권교체가 50.0%, 정권재창출은 40.1%였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호재가 있을 때에도 좀처럼 오르지 못하는 이유도 대선 판도 자체가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에 의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것은 곧 현 정권 실패의 방증이다. 문재인정권이 일자리·부동산정책 등 내정에서 파탄을 냈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현 정권의 통일·외교·안보 성과를 놓고서는 평가가 갈린다. 일각에서는 현 정권이 "평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인 2018년 2월 청와대에서 신임 대사 신임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외교가 국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이해 12월에는 뉴질랜드 순방 와중에 기내간담회 자리에서 "국내 문제는 질문받지 않겠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만 놓고보면 국내 문제에는 손을 놓은 채 외교에만 '올인'한 대통령으로 비친다. 그런데도 5년 임기 내내 외교 분야에서 무슨 성과를 냈는지가 불분명한데다, 해외 순방을 할 때마다 외유 논란에 번번이 휩싸였다는 것은 웃지 못할 희극이다.
최근 중동 3국 순방 과정에서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피라미드 국제 관광' 논란에 휩싸였다. 이는 임기말에 새삼스레 부각된 논란이 아니다. 지난 2019년에 이미 김 여사의 해외순방 '버킷 리스트'가 있는 것 아니냐는 칼럼이 나왔다.
남정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당시 김정숙 여사의 해외순방 방문지인 △앙코르와트(캄보디아) △타지마할(인도) △프라하 구시가(체코) △호이안(베트남) △성 베드로 성당(바티칸) 등을 열거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점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피라미드는 이 리스트에 새롭게 하나 추가된 것일 뿐이다.
문대통령 내외 인도 국빈방문했는데
넉 달만에 영부인 단독 재방문…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심드렁하자
'BTS 카드' 꺼내 수장고까지 둘러봐
그 중에서도 특히 입맛이 개운치 않은 게 인도 타지마할 방문이다. 문 대통령 내외는 2018년 7월 8일부터 11일까지 인도를 국빈방문해 정상회담까지 했다. 그런데도 김 여사는 넉 달 뒤인 11월에 단독으로 인도를 재방문했다. 인도에서 우타르프라데시 주 아요디아 시에 조성하는 '허왕후 기념공원' 착공식을 앞두고 우리나라에 참관단 파견을 요청하자, 우리가 영부인을 선정해서 인도에 초청을 요청한 것이다.
김정숙 여사는 3박 4일의 일정 도중 셋째날에 착공식을 참관했고, 넷째날에 타지마할을 관광한 뒤 귀국했다. 넉 달 전 국빈방문 때는 시간 부족으로 타지마할을 미처 관광하지 못했다. 당시 김 여사가 "시간이 없어 타지마할의 전신인 후마윤 묘지에 왔지만, 다시 오면 타지마할에 꼭 가겠다"고 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중앙일보 칼럼의 파장이 커지자 청와대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칼럼은 정정보도의 대상이 아니며, 칼럼 내용 역시 진실이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청와대는 항소했으나 항소심에서도 패색이 짙자 슬그머니 소송을 취하했다.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소송 과정에서 중앙일보가 해당 국가 대사관들로부터 취재해보니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은 인도 측이 요구하지 않았다'는 대반전이 일어났다"며 "다시 말해 '김정숙 버킷 리스트'에 대한 의혹 제기가 거짓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지난해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 갔다. 뉴욕에서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둘러보려 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에 따르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애당초 김 여사의 방문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탁현민 비서관은 교통방송라디오 '뉴스공장'에 출연한 자리에서 "우리 측에서 '미술품을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해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순서를 좀 기다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반응이었다"며 "'우리가 시간이 많이 없다'고 했더니, 그쪽에서 '시간이 없으면 다음에 하자'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에 청와대는 BTS(방탄소년단) 카드를 꺼내들었다. 영부인과 함께 BTS가 가겠다고 했더니 비로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행사를 위한 공간을 내어주고 김정숙 여사가 수장고까지 둘러볼 수 있게 배려해줬다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볼 수 없는 수장고를 보기 위해 BTS가 활용됐다는 의미가 된다.
순방으로 남남갈등 촉발…전례없는 일
정작 영국·프랑스 정상과의 회담에선
대북제재 완화 거론했다가 거절당해
"버킷 리스트, 정권교체 후 규명될 것"
비단 영부인 '버킷 리스트' 논란을 제쳐두더라도 문재인 대통령 본인의 순방 성과도 보잘 것 없기는 매한가지다. 성과가 없는 것도 모자라서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내기도 했다.
카톨릭 신자인 문 대통령은 2018년과 지난해 두 차례 교황령을 방문했다. 5년 임기 중 교황령을 두 차례나 방문한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유일하다. 2018년 방문 당시 문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미사까지 드렸다.
이와 관련 지난달 21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에서 열린 전국승려대회에서는 격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도각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스님은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는 매우 굴욕적인 '알현'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우리 민족의 평화를 교황에게 부탁하는 등 특정 종교에 치우친 행보를 해왔다"고 규탄했다.
원행 총무원장스님은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도 불공정했으며 결과도 정의롭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통해 남남 갈등을 촉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외유 논란에 남남 갈등까지 불러일으킨 순방이지만 정작 목적도 성과도 뚜렷한 게 없었다. 2018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은 10월부터 서유럽 순방에 나섰다. 특히 핵심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 정상과의 회담이었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완화할 생각이 없어보이자, 문 대통령은 영국과 프랑스를 움직여 북한을 위한 돌파구를 열어주려 했다.
문 대통령은 순방 기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수상과 잇달아 정상회담을 가지며 대북제재 완화를 공론화했지만, 사실상 면전에서 거절당하는 '외교 참사'를 빚었다. "유엔 제재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과의 접촉에 아무런 성과가 없자 청와대는 급히 교황의 방북 의사를 이끌어냈다고 포장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교황이 방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는 우리 사회 내부의 종교 갈등만 촉발했다.
우리도 아닌 북한의 일을 가지고 해외 순방을 하다가 그마저도 실패해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면 과연 이를 국가원수의 통치행위로서의 해외 순방이라고 일컬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 외유에 불과하다고 평가해야 할 것인지 검토의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입으로는 사회적 약자, 평등, 촛불, 민주주의 등 온갖 고상한 단어를 떠들던 자들이 권력을 잡고난 뒤 무슨 짓을 하는지 지난 5년간 똑똑히 목격했다"며 "김정숙 여사의 버킷 리스트가 있었는지 여부도 정권이 바뀐 뒤에는 규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