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돌파구①] ‘재미없는’ 독립영화, 봐야 하나요?
입력 2022.01.28 07:53
수정 2022.01.28 07:53
“지금 넷플릭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감독들도 단편, 독립영화부터 필모그래피 쌓은 분 많아.”
“상업영화만 존재한다면, 오락적인 측면으로만 소비될 수도. 독립영화는 다양하게 사유할 수 있는 힘 길러준다. ”
‘#SaveOurCinema(세이브 아워 시네마)’
지난 2020년 배우 이제훈부터 김혜수, 한지민, 공효진, 수지, 신민아, 한예리, 최희서 등 영화계 스타들이 SNS를 통해 “우리 영화를 살려달라”고 외쳤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독립·예술영화와 영화관을 돕기 위해 시작된 온라인 캠페인으로, 많은 영화감독, 스타들이 SNS에 ‘#SaveOurCinema’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자신에게 영감을 준 독립·예술 영화 서너 편을 추천했다.
이제훈은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 다르덴 형제 감독의 ‘더 차일드’를 추천하면서 “독립영화를 통해 성장해왔고, 지금도 저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독립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깊고 넓은 시각과 생각을 일깨워주는 매우 소중한 길잡이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제훈의 움직임이 영화계 안팎에서 더 관심을 받는 이유는 그가 독립영화를 통해 관객, 영화인들에게 ‘발견’된 배우이기 때문이다. 2011년 영화 ‘파수꾼’이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2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해당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이 주목을 받았다. 흔들리고 방황하는 10대 소년을 섬세하게 표현한 이제훈과 박정민은 이 영화를 통해 존재를 각인시킨 이후,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파수꾼’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은 최근 ‘사냥의 시간’을 통해 넷플릭스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현재 한국 영화계의 보석과 같은 존재들이 대거 배출된 것이다.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을 통해 전 세계 구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낸 연상호 감독의 시작도 독립영화였다. 2011년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2013년 ‘사이비’를 통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제시하며 가능성을 입증했던 그는 이후 첫 상업영화 ‘부산행’으로 단숨에 천만 감독이 됐다.
독립영화가 상업영화로 진출하는 과정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인 감독과 배우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장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자본과 상업영화 제작 시스템으로부터 독립된 작품을 뜻하는 독립영화는 그렇기에 투자자나 흥행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상업영화에서는 주목하지 않는 소재들을 다루기도 하고, 새로운 방식을 통해 이를 전달할 때도 있다. 연 감독처럼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내며 독립 정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들에게 투자가 이뤄지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독립영화들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영화인들이 ‘독립영화를 살려달라’라고 외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 이지연 센터장은 독립영화는 산업적 관점에서도 꼭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은 물론, 지금 넷플릭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감독들도 단편, 독립영화부터 꾸준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성과를 만들어내신 분들이 많다. 지금은 큰 무대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영화의 문화적 기여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익숙한 상업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있기에 낯설고, 또는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경험들을 남기기도 한다.
이 센터장은 “독립영화 자체는 다양성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다양한 작품을 접하며 삶이 한층 풍부해지는 것은 물론, 사회참여적 작품들을 통해 인식 확장도 가능하다. 우리 삶을 한층 풍성하게 해 주면서 시야를 넓혀주는 문화적인 역할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독립영화들을 배급하고 있는 배급사 씨네소파의 최예지 이사 또한 “상업영화만 존재한다면, 영화가 오락적인 측면으로만 소비될 수 있다. 영화를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다양하게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또한 예술 중에서는 영화가 대중들과 유독 가까운 분야기도 하다. 문화 다양성을 넓혀주는, 기초학문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상업영화조차 흔들리는 상황에서 독립·예술영화는 더욱 설 자리를 잃고 있다. CGV아트하우스를 비롯해 다수의 독립·예술전용관이 휴관 또는 폐관한 가운데, 지난해 독립·예술영화 관객수는 466만 명으로 집계됐다. 그중 한국 독립·예술영화 관객 수는 76만 명으로 16.3%에 그쳤으며, 1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기기괴괴 성형수’ 단 한 편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