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리와인드㉛] ‘내과 박원장’ 서준범 작가, 웃음 뒤에 담긴 현실
입력 2022.01.26 11:55
수정 2022.01.26 11:55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어, 또 한 번 웹 시트콤 도전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티빙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내과 박원장’으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는 서준범 감독은 이 드라마의 연출과 각본을 동시에 담당했다. CF 감독으로 더욱 잘 알려진 서 감독은 지난 2019년 웹드라마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를 통해 드라마 감독 겸 작가로 데뷔했다. 광고 회사의 이야기로 자신의 경험을 살렸다. 직장생활과 연애 이야기 등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상적인 소재를 B급 감성으로 담아낸 시트콤이었다. 이후 2020년에는 ‘광고감독의 발암일기’로 웹툰 작가에 도전. 광고, 웹툰, 드라마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 중이다.
현재 방송 중인 ‘내과 박원장’도 서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가 녹아있는 시트콤이다. 한 초보 개원의의 ‘웃픈’(웃기지만 슬픈) 현실을 그려낸 메디컬 코미디 드라마로, 진정한 의사를 꿈꿨으나 오늘도 파리 날리는 진료실에서 의술과 상술 사이를 고민하는 박 원장(이서진 분)의 적자탈출 생존기를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다.
◆ 짧지만, 강렬한 전개…웹시트콤으로 선사하는 웃음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모인 광고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는 광고 촬영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내는 웹시트콤이다. 광고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만큼 디테일이 살아있어 생동감 넘치는 전개가 가능했다. 이 현실감을 바탕으로 각종 분노 유발 캐릭터들의 예측 불가능한 활약이 분노와 웃음을 동시에 유발하곤 했다.
실제 광고 촬영 현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리얼리티에,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그 속에서 싹트는 연애 감정 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담기기도 했다. 분노를 유발하는 상사부터 작은 배려에 늘 보던 직장 동료가 갑자기 멋있어 보이는 순간 등 굵직한 사건들 사이 사소한 공감 포인트들을 함께 담으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도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내용들이 유쾌하게 전개된다는 것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의 매력이다. 특히 극의 우당탕탕 분위기와 달리, 담담하게 전개되는 내레이션이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각종 반전 상황들이 이어져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공개 무대가 웹이었던 만큼 톡톡 튀는 B급 감성으로 여느 오피스 드라마와의 차별화를 보여줬다.
이 장점은 ‘내과 박원장’에서도 고스란히 발휘되고 있다. 초보 개원의의 ‘짠내’ 가득한 일상을 담는 이 드라마는 민머리 분장까지 하며 파격적으로 망가지는 이서진의 코믹 활약이 웃음을 유발한다. ‘의외성’을 위해 이서진을 캐스팅했다는 서 감독의 말처럼, 이서진이 본격적으로 망가지고 나서자 ‘전재산을 탕진한 것이 아니냐’는 재치 넘치는 반응들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전개 중간중간 인터뷰 형식으로 캐릭터들의 속내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흥미를 주기도 한다. 현실감을 바탕으로 한 빠른 몰입과 독특한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신선한 웃음 등 짧지만 강렬한 전개가 필요한 미드폼 드라마를 영리하게 활용 중인 서 감독이다.
◆ 웃고 난 뒤 남는 씁쓸함, 재미와 여운 동시에
광고 회사의 조감독 이지원(예원 분)이 주인공인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는 매회 온갖 황당한 일들을 마주하는 그의 고군분투기가 드라마의 중심축이 됐었다. 각종 황당한 요구를 들으며 당황하고, 애를 쓰면 쓸수록 촬영은 산으로 가는 과정들이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가끔은 점심도 못 먹은 채 뛰어다니는 지원의 모습이 짠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웃으며 보다가도 내 이야기 같아 씁쓸해지는 ‘웃픈’ 감정을 유발했다. 더불어 영화 일을 꿈꾸다 포기하고 현실에 적응 중인 지원의 이야기는 직장인은 물론,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청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기도 했다.
‘내과 박원장’ 역시도 웃음 뒤 남는 여운을 목표로 삼고 있다. 메디컬 드라마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이 작품 속 의사는 우리가 여느 드라마, 영화에서 봤던 의사들과는 조금 다르다. 공짜 커피 믹스를 노리는 짠돌이 의사부터 악성 후기 걱정에 전전긍긍하고, 병원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댓글 정화’ 작업에 나서는 모습까지. 소소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에피소드들이 공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현실감’을 전개 원동력으로 삼는 ‘내과 박원장’이 또 어떤 신선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에피소드들로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할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