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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 퇴임 4개월 앞, 취임사 얼마나 지켜졌나 [고수정의 참견]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입력 2022.01.07 07:00
수정 2022.01.07 05:04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호평 받은 文 취임 연설

분열 정치 종식·소통·탕평 인사 등 지켜진 것 없어

임기 마지막 신년사서 지난 5년 국정 자화자찬만

"잘못하면 잘못했다 할 것" 인정하고 약속 이행해야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2월 취임사에서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서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고 천명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이러한 포부는 민주화 이후 치러진 대선 중 최다 득표율(51.55%),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등 다양한 수식어와 합쳐져 장밋빛 5년을 꿈꾸게 했다. 하지만 그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임기를 채 마치기도 전 탄핵당했다. 국민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되뇌며 분노를 표출했다.


대통령 취임사는 새 정부의 비전을 집약적으로 담은 국정운영의 청사진이지만, 임기 중 부정부패 등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을 땐 비판의 소재로 활용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도 그랬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관통하는 문장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다. 차별 철폐,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조성해 이제껏 국민이 겪어보지 못한, 또 염원했던 나라로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평가됐다.


하지만 이 '명문'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비리 의혹과 그로 인한 극심한 진영 대결,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요원 정규직 전환 사태, 집값 폭등 등 각종 논란을 마주한 국민의 절망이 담겨 "정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됐다"는 비아냥으로 변질됐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서민 단국대 교수 등이 펴낸 책 제목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부제 :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가 이에 속한다.


물론 문 대통령의 공언대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파격적인 정책도 많았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소득주도성장 기치 아래 펼쳐진 경제정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진 것보다 지켜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가장 힘주어 말한 '광화문 대통령 시대'는 일찍이 좌초됐다. 경호나 의전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약속은 주요 사안을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는 약속,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고 한 약속과 함께 유야무야됐다. 문 대통령이 국민 소통의 장을 마련한 건 지난해 11월이 마지막이고, 이마저도 코로나19 상황 등으로 2년 만에 개최했으며 참석자도 제한됐다.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제외하고 주요 사안에 대해 직접 브리핑에 나선 건 2019년 12월 17일 정세균 국무총리 인선 발표가 마지막이다. 정작 주요 사안은 대변인의 대독으로 갈음했다. 찬반 대립이 거센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입장이 그러했다.


문 대통령은 "분열과 갈등을 정치를 바꾸겠다"며 그 해법으로 능력 위주, 적재적소 인사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역시도 지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임기를 4개월여 남긴 지금까지 코드 인사, 회전문 인사를 고집했다. 그 결과는 공정성 논란과 같은 참사를 야기했다. "저에 대한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이를 맡기겠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며 출범에 정당성을 부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현재 언론·야당에 대한 무차별 사찰 논란에 휩싸였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4년 8개월 동안 말에 그쳤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임기 마지막 신년사에서 "위기와 격변 속에서 우리 경제는 더욱 강한 경제로 거듭났다" "모든 면에서 비약적 성장을 거듭했다" 등 자화자찬만 했다. 정책 실패로 인한 국민의 고통, 공약 불이행에 대한 비판은 외면했다. '말 잔치' '쇼통'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나올 법 했다.


이제 문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4개월이다. 결코 짧지도 길지도 않다. 자랑만 할 때가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문 대통령에게 남은 과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취임사에서 했던 약속을 할 수 있는 한 이행하는 것이다.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해서는 사과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우리는 문 대통령이 취임 당시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하겠다"고 한 걸 기억한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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