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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라는 구호의 뒷면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1.08 08:00
수정 2022.01.08 19:57

현란한 정치적 구호의 뒤쪽에서는

실망과 고통으로 국민들이 사라진다

정당이 정권을 잡거나 지키기 위해서 내거는 구호는 달달하거나 날이 퍼렇게 서있다.


후진적인 정치문화에 질려 이를 외면하는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산뜻하거나 섬뜩한 한 마디는 선거 국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대선을 두 달 앞둔 때인데도 올 해는 아직 여·야가 그런 말을 찾지 못한 듯하다.


그런 점에서 몇 해 전 문재인 후보가 내건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은 상당한 소구력(訴求力)이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아마 세월호 사고(2014.4)로 304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음을 질타하는 “국가는 뭘 하고 있었는가?“라는 비난이 들끓을 때라, 사람들이 더 솔깃해 했을 수도 있겠다.


세월호가 갖는 거대한 참혹함은 무엇으로도 덮기 어려웠다. 그 아픔은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을 짓누르고 있다.


그때도 세월호 사고를 가지고 대통령과 정부를 일방적으로 혹독하게 비난하고 몰아치는 것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많았다. 선박이 사고를 당했는데, 추리닝 차림의 선장이 사고 선박을 남 먼저 탈출하고 해경이 바깥으로만 돌 때, 대량 피해는 불가피했다.


한국의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을 학습한 중국은 1년 뒤(2015.6) 양자강에서 여객선이 침몰해 44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닷새 만에 선체를 인양하고 7일째 합동 추모제를 치루고 상황을 끝내버렸다.


당시 중국 언론은 철저히 통제가 됐고, 관영 언론은 ‘어차피 정부가 욕을 먹게 돼 있는데, 상황을 빨리 종료하는 게 낫다. 오래 끌면 세계적인 뉴스로 커진다’는 애국주의적 관점을 설파했다. 중국식 일처리였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고상함은 중국에 없었다.


한 인간 안에서 하늘과 우주가 함께 숨 쉬고 있다는 말을 빌린다면, 수백 명이 사망한 사고나 한 사람이 숨진 사고나 본질은 같다. 단지 정치적인 판단이 다를 뿐이다.


2020년 9월 22일 밤, 한국 해수부 공무원 한 명이 서해상에서 함상 근무를 하다가 실종된 뒤, 북한군의 총에 사살 당하고 해상에서 시신이 소각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이 먼저”라던 문 대통령은 한 생명이 사그라지는 그날 밤 무슨 결정을 했는지, 국방부와 해경 등은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 대통령은 그 시간에 꿀잠을 잘 수 있었는지 한번 규명해 볼 필요가 충분히 있다.


당시 국방부는 “공무원 이 모씨가 자진 월북했고, 북측이 총격을 가한 후 시신을 불태웠다“는 요지로 발표했다. 그러자 유족들은 ”고인이 자진 월북할 이유가 없고, 사망 경위 역시 불확실하다며, 관련 자료를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정부와 청와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그 뒤 청와대와 해양경찰청을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해 11월 “청와대는 국방부와 해수부에서 받은 보고 내용과 각 부처에 지시한 내용을 공개하고, 해경은 이 씨가 탑승했던 ‘무궁화10호’ 직원 9명의 진술조서와 초동 수사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북한군 대화 감청 녹음 파일’은 군사기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패소한 청와대와 해경은 법원의 판결에 따르고 진심으로 사과했을까? 천만에. 청와대와 해경은 모두 항소했다. 고인이 근무 중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는 유족들의 간절함은 이렇게 방해 받는다.


“사람이 먼저”라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인 2017년 6월, 환경부가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결과를 보고 받고, 문 대통령은 “정부가 패소했으면 항소를 자제하고, 그냥 따르면 된다. 자꾸 이러면 세상이 바뀌겠느냐”고 항소 자제를 지시하기도 했다.


들을 때는 신선했지만, 말 뿐이었다. 국민들이 원하는 적폐청산은 이런 정부를 고쳐 달라는 거였다.


대통령은 사건 직후 유족에게 “직접 챙기겠다”는 편지 한 장 보내 놓고 챙기기는커녕, 법원의 판결도 따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피살 공무원 유족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을까? 이 현장을 찾았던 한 정치인은 ”대통령이 보낸 편지는 국민을 속이는 쇼였다“고 비판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 정부가 임기를 다해 가는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자살로, 코로나 감염으로 귀한 생명들이 곁을 떠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가운데 15년째 자살률 1위로 하루 36명, 1년에 1만3000여 명이 삶을 마감한다. 자살 기도자는 하루 760명을 넘는다(양두석 안전생활시민연합 자살예방센터장).


고령자 층에서는 코로나-19 감염이 심각하다. 코로나 창궐 2년, 우리나라에서는 65만명이 감염돼 6000명 가까운 생명이 우리를 떠났다.


이런 아픔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최선을 다했는지 묻고 싶어진다.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저출산은 더 큰 문제다. 2021년 우리나라는 유엔 198개국 가운데 합계출산율 1.1명으로 198위, 꼴찌다. 2020년 사상 처음으로 총인구가 감소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다. 멋진 구호의 뒷면은 이렇게도 슬프고 고통스럽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국민을 현혹 시킬 더 좋은 말 한마디를 찾고 있다.


글/강성주 전 포항MBC 사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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