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엔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폐기물 줄지만 위생‧보관문제 난감”
입력 2022.01.04 07:05
수정 2022.01.03 16:05
‘소비기한’ 도입 1년 앞으로…“폐기물 줄지만 위생‧보관문제 난감”
연간 식품 폐기량은 548만톤, 처리비용은 1조원 넘어
보관 문제로 식품사고 발생 시, 기업 이미지‧신뢰도 저하 불가피
선적용 불가 방침에 포장재 등 자원낭비 우려도
식품업계가 소비기한 도입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식품 폐기물 감소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이지만, 만에 하나 식품 위생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이 고스란히 책임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4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소비기한 도입 내용을 담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작년 8월1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내년 1월1일부터 적용된다. 다만 우유 등 냉장보관기준 개선 필요 품목은 시행일로부터 8년 이내 적용을 유예한다.
지난 1985년 국내에 도입된 유통기한은 대형마트, 편의점 등 유통업체가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기한을 의미한다.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식품을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식품의 경우 보통 소비기한의 60~70% 수준에서 유통기한을 정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이 지나면 먹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해 식품 폐기물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소비기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유통기한이 도입될 당시에 비해 식품 제조기술이나 냉장 유통 등 환경이 개선된 점도 소비기한 도입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관련 업계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따르면 국내 연간 식품 폐기량은 548만톤으로 처리비용은 1조원이 넘는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선진국에서는 소비기한 표시제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유럽, 캐나다 등에서는 소비기한을 도입하고 있다.
식품기업들은 소비기한 도입을 통한 식품 폐기물 감축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소비기한이 도입될 경우 유통채널에 상품을 진열,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 식품기업 입장에서는 폐기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해당 식품의 섭취 기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어서 혼란을 방지하고 식량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 후 잘못 보관해 생긴 사고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진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보관 상 이유로 식품사고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에게도 과실을 물을 수는 있지만 이를 확인하기가 어렵고, 무엇보다 사고 발생 시 해당 기업의 신뢰도와 제품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온도에 민감한 우유 등 냉장식품의 경우 냉장온도 기준 강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일반 상온 식품의 경우에도 보관이나 유통 상 문제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소매점의 경우 소비기한이 지난 상품 재고 처리가 적시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식품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은 안전이슈에 굉장히 민감하다. 식품 사고 한 번이 수십년을 유지해온 좋은 이미지를 날려버릴 수 있다”며 “나중에 조사 결과 소비자 책임이 입증된다고 해도 이미 기업의 이미지나 신뢰도는 추락하고 난 다음 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비기한 도입에 앞서 식품 보관 등에 대한 소비자 위생 교육 등 인식 전환을 위한 사전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도 보관이나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기술적인 부분과 마케팅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소비기한 적용 시점이 2023년 1월1일로 정해져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본격적인 제도 시행에 앞서 유예기간을 두고 미리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아쉽다는 것이다.
보통 소비기한 등 제품 정보는 제품 패키지나 라벨에 인쇄하는데 올해 출시하는 신상품이나 리뉴얼 제품의 경우 올해는 유통기한으로, 내년에는 소비기한으로 바꿔서 인쇄해야 한다는 점이다. 친환경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포장재 등 낭비 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