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디지털 선도 K조선…남 좋은 일 되지 않으려면 [김민희의 해설(海說)]
입력 2021.11.15 07:00
수정 2021.11.15 05:57
핵심 기자재 국산화 및 탑재율 높여 호황 산물 오롯이 누려야
조선사, 한국형 LNG화물창·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 박차
규제완화·인력양성 및 트랙레코드 쌓기 위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
‘수주 목표 초과 달성’. 올해 재도약에 성공한 국내 대형 조선 3사에 붙은 수식어다.
수주 절벽으로 오랜 기간 침체를 겪어온 조선업계가 올 초부터 수주 랠리를 이어오고 있다. 각사별 연간 수주목표 달성률은 한국조선해양 146%, 삼성중공업 123%, 대우조선해양 119%에 달한다.
이러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후반까지 이어졌던 조선산업 황금기가 다시 찾아오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새로 오는 황금기의 조선산업 패러다임은 조금 다르다. 더 많은 친환경·디지털 신기술들이 들어가고, 그에 따른 건조비용도 증가한다. 이걸 내재화하지 않으면 호황의 산물을 오롯이 누릴 수 없다.
그동안에도 한국 조선업계는 완전한 기술 자립을 이루지 못한 탓에 선박 핵심 기자재 비용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친환경·디지털 선박 수주를 선도하더라도 수주금액의 큰 부분을 해외 기자재 기술료로 지불하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선산업에서 조선기자재 국산화율은 80% 이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 탑재율은 선주사의 선호, 개발된 기자재의 신뢰성 부족, 낮은 내수 비중 등으로 국산화율보다 낮다는 분석이다.
특히 LNG운반선이나 해양플랜트와 같은 고가 선박·설비일수록 해외 기자재 탑재율이 높다. 대표적 예로 LNG선 핵심기술인 ‘LNG화물창’이 있다. 화물창은 극저온 환경에서 액화한 천연가스가 기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시설이다. 대다수 선주들이 원천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GTT의 화물창을 선호하기 때문에, 국내 조선사들은 선박 건조 시 해당 화물창을 탑재할 수 밖에 없고 척당 100억원(선박 건조 비용의 약 5%) 이상의 로열티를 GTT에 지불하고 있다.
이는 수주산업인 조선업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선주들은 20년 가량 선박을 운용해야 하므로 우수한 성능과 트랙레코드를 보유한 ‘검증된 제품’을 선호한다. 앞서 국내 조선사가 ‘KC-1’이라는 LNG화물창 기술을 개발했지만 안정성 문제로 트랙레코드를 쌓지 못하며 선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때문에 향후 친환경·스마트 선박 시대로의 변화에 맞춰 핵심 기자재의 원천기술을 발 빠르게 확보하고 ‘국산 기자재 탑재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2023년부터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맞춘 친환경 선박 수요가 증가하고, 2025년에는 자율운항 선박 시장 규모가 급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기술 자립의 기회가 다시 열린 것이다.
한국 조선사들은 국산 기자재 탑재율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 중이다. 내년 말을 목표로 한국형 LNG 화물창 ‘KC-2’를 개발하고 있고, 다가오는 자율운항 선박 시대에 대비해 충돌 회피 해상 기술·스마트십 보안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해외 기자재 업체들의 기득권을 깨긴 쉽지 않다. 규제완화, 인력양성 등을 통한 기술개발 지원은 물론, 트랙레코드를 쌓기 위한 정책적 지원도 절실하다.
해운사가 기자재를 채택해야만 선박에 탑재할 수 있으므로 국내 선사를 기술개발~상용화 단계에 참여시켜야 하며, 정부는 관련 R&D 자금·선박금융 지원·보증보험 등 단계별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산업연구원의 지적에도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자율운항 선박 개발과 조기 상용화를 위한 빠른 제도적 기반 마련도 중요하다. 2025년 자율운항 선박 시장 규모는 올해의 2배 가량인 1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은 2012년부터 자율운항 선박 개발을 위한 기술적·제도적 연구를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2023년까지 자율운항 선박에 대한 정의와 운항 주체, 자율등급에 대한 기준을 정립한다는 계획이다.
핵심 기자재의 국산화와 탑재율을 높이는 것은 로열티 지불 문제 뿐 아니라 글로벌 기자재의 가격을 낮추고 견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간만에 돌아온 호황기에 열심히 돈 벌어서 남 좋은 일 시킬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