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의 해설(海設)] 공정위 ‘과징금 폭탄’에…공든 해운재건 무너질라
입력 2021.07.14 07:01
수정 2021.07.14 05:39
운임담합 의혹에 ‘천문학적’ 과징금…중소사 파산 우려도
해운법 따른 처벌 및 정확한 신고 절차 규정 필요
정부와 기업이 공들여온 '해운재건'이 공정위의 탁상공론식 과징금 처분 하나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동남아항로 취항 국내 선사 12개 업체에 대해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심사보고서를 제출했다. 과징금 규모는 5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선사들이 존립 위기에 처할 수도 있을 만큼의 큰 금액이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목재 수입업계가 2018년 7월 동남아시아 항로 운임 담합이 의심된다며 국내 해운사들을 신고한 지 약 3년 만이다. HMM과 SM상선,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 등 주요 해운사들이 제재 대상에 올랐다.
심사보고서에는 2003년 4분기부터 2018년까지 약 15년 동안 해운사들이 동남아항로에서 발생한 매출의 8.5~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과징금은 중견 해운사들(SM상선,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의 지난해 영업이익을 합친 약 4250억원을 훌쩍 넘는다. 공정위 조치가 현실화되면 배를 팔아 과징금을 메워야 할 판이다.
과연 해운사들의 위법이 존립을 위협받을 정도의 과징금을 물 정도로 큰 것이었을까?
일반적인 공정거래법을 적용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업종 특성에 따라 선사들의 운임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 예외 적용을 받을 수 있다.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를 했다면 공정거래법 제58조에 따라 그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해운법 등에 따른 정당한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화주 단체와 사전 서면 협의 ▲공동행위 내용 해수부 장관에 신고 ▲공동행위로부터 탈퇴를 제한하지 않음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한다.
여기서 한 가지 쟁점사안이 있다. 위 3가지 요건 중 운임 부속협의 신고 절차를 한 차례 미준수했음이 문제가 됐다. 해운업계는 “운임 기본협의는 신고를 해왔으며, 부속협의는 ‘신고대상’ 자체가 아니다”며 억울해하고 있다. 나머지 요건은 모두 충족했으나 부속협의의 신고 의무 여부에 대한 해석 문제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에 대한 해운사의 의견서를 받아 연내 전원회의(심의)를 열고 관련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 등을 가린다는 방침이다.
공정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법 해석상의 문제로 회사의 존립을 걱정할 만한 과징금을 얻어맞는 게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탁상공론 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주관 부처인 해양수산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만약 공정위의 과징금이 현실화된다면 ‘제2의 한진해운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4년 간 공들여 재건한 해운산업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해운사들이 앞으로 ‘과징금 함정’에 걸리지 않도록 부속협의 신고 절차 등과 같은 모호한 규정도 명확히 정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