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당정 다툼에 실종된 투자자 보호 대책
입력 2021.11.04 16:37
수정 2021.11.04 16:38
내년 1월 가상화폐 소득 과세 예정
정부·정치권, 제도 시행 놓고 맞서
정작 투자자 보호책 논의는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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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가상화폐(암호화폐) 과세 문제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정작 투자자 보호 대책 마련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가상화폐를 통해 얻은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20%의 세율(지방세 제외)로 분리 과세하기로 했다. 기본공제 금액은 250만원으로 1년간 여러 가상화폐에서 얻은 소득과 손실을 합산해 세금을 매기는 손익 통산을 적용한다.
이를 놓고 정치권과 정부는 현재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정치권은 준비 부족을 이유로 과세 유예를 요구하고 기획재정부는 충분히 과세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맞서고 있다.
과세 유예를 주장하는 쪽은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과세와 관련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양도소득세를 매기기 위해서는 매입원가 산정이 필수인데 거래소 간 이동이 계속 일어나는 가상자산 특성상 이를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불어 정부로부터 과세 관련 가이드라인을 전달받지 못해 사실상 과세를 대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기재부는 이미 과세 준비가 충분히 이뤄진 상태라고 반박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실제 과세 시점은 2023년 5월로 본다”며 “과세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세금 산정을 위한 취득 원가 판단이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기재부는 “고객 동의를 전제로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다른 거래소에 고객의 가상자산 취득 원가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해외 거래소에서 국내로 이전한 가상자산 또한 해외 거래소에서 취득할 당시 매입가격을 원가로 판단하기로 했다.
실제 국세청은 지난달 25일부터 이틀간 금융위원회에 신고를 마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29곳 중 28곳을 불러 과세 관련 컨설팅을 하면서 제도 준비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과 기재부가 가상화폐 과세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는 동안 시장은 급격히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4대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의 가상화폐 거래대금은 3584조198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연간 거래금액(529조3159억원)의 6.7배에 이르며 같은 기간 코스피 거래금액(3125조8638억원)과 비교해도 450조원 이상 많다. 추세대로면 올해 말 가상화폐 거래금액은 45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상황에 지난 7월에는 2조원대 사기 혐의로 가상화폐 거래소 대표 등 4명이 구속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거래소 회원 가입 조건으로 600만원짜리 계좌를 최소 1개 이상 개설하도록 해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회원 5만2000여명으로부터 2조2100억여원을 입금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79곳이 보유 중인 94개 집금계좌 가운데 11곳이 위장계좌였던 사실이 금융당국에 의해 적발된 적도 있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오징어 게임 인기를 바탕으로 2400배 폭등했던 가상화폐가 개발자 ‘먹튀’로 수천만 달러의 피해를 낳기도 했다.
한 가상화폐 투자자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정부 주장은 받아들이겠다”면서도 “투자 소득에 대해 세금을 받으려면 투자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만들어야 마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솔직히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 방식에 대해 우리 같은 일반 투자자들이 얼마나 알겠냐”며 “세금을 걷으려면 거래소 ‘먹튀’나 입금 지연 사고와 같은 문제는 정부가 사전에 안전장치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가상화폐 과세 전제조건으로 거래자 보호와 재산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달 자본시장연구원 개원 24주년을 기념해 ‘디지털 화폐, 디지털 자산과 금융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온라인 세미나에서 김갑수 자본시장연구위원은 “암호화폐 수익에 대해 과세의 전제조건으로 정부의 거래자 보호와 재산권 보장이 상당한 수준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발행인과 거래자 간 정보 비대칭성 ▲불공정거래 금지규정 부재 ▲암호화폐 거래플랫폼 규정 미비 및 매매 기능과 예탁결제기능의 미분리 ▲암호화폐 보관관리업자의 고객자산 보호 의무 미비 등을 꼬집었다.
그는 “암호화폐 시장의 대규모 비대면 거래의 특성을 반영해 시세조종,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부정행위, 시장교란 행위 등에 대한 금지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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