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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서거] ‘88 올림픽·한반도기’ 체육계 뚜렷한 족적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입력 2021.10.27 09:23 수정 2021.10.27 09:36

체육부장관·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대한체육회장 등 굵직한 활동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적 유치 및 개최 앞장

국제대회 남북 공동 입장에 쓰이고 있는 한반도기도 재임 시절 탄생

88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 연합뉴스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오후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남북 스포츠 교류의 상징인 ‘한반도기’도 탄생시키는 등 체육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고인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정무장관으로 서울올림픽 개최를 진두지휘했다. 반드시 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는 전두환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당시 노태우 정무장관은 범국민적인 유치 활동을 앞장서 이끌며 1981년 9월 30일 이른바 ‘바덴바덴의 기적’을 이뤄냈다.


노 전 대통령의 노력 끝에 후발 주자였던 서울은 경쟁국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제 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감격을 누렸다.


1982년 체육부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거친 노 전 대통령은 1983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 겸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을 맡았고, 1984년에는 28대 대한체육회장 겸 18대 대한올림픽위원장으로 선임돼 2년 간격의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준비를 지휘했다.


1987년 대선에서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된 고인은 1988년 9월 17일, 자신이 앞장서 유치를 이끌어 낸 서울올림픽의 개회 선언을 하는 감격을 누렸다.


특히 서울올림픽은 냉전 체제를 무너뜨리고 전 세계에 화합의 메시지를 준 의미 있는 대회로 아직까지 기억되고 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이 냉전으로 인해 반쪽 대회로 치러졌지만 서울올림픽은 사상 최다의 참가국(160개국), 최대 참가 인원(8465명)을 기록하며 세계화합의 장을 열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 접견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 ⓒ 연합뉴스

특히 한국은 올림픽 성공적 개최로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며 향후 외교력에서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금메달 12개로 종합 4위에 올라 이때부터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경험은 2002년 한일 월드컵,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등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 유치와 성공 개최의 기반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남북공동입장 때 쓰이고 있는 ‘한반도기’도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탄생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남북은 1989년 판문점 체육회담을 통해 단일팀 결성 시 ‘흰색 바탕에 하늘색 우리나라 지도’가 새겨진 한반도기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아쉽게 아시안게임서 단일팀은 무산됐지만 이듬해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수선수권대회에서 한반도기가 공식 첫 선을 보였다.


특히 여자 단체전서 남북 단일팀은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한반도기를 전 세계에 제대로 각인시켰다.


그해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도 한반도기를 사용해 아르헨티나를 물리치고 8강까지 올랐다.


남북 화해무드 속에 1991년 9월에는 남북한이 UN에 동시 가입했고, 이를 배경으로 노태우 정부는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성과를 냈다.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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