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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⑨] 한소희, 논란을 지우는 연기의 정석(마이네임)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1.10.26 08:30
수정 2021.10.26 08:30

배우 한소희 ⓒ이하 넷플릭스 제공

연예인이 논란에 휩싸인 순간에는 그대로 직업 생명이 끝일 것 같지만 돌아오는 경우도 숱하다. 논란의 배경이 된 사건이 준 실망감이 클수록 회생의 시기는 멀지만, 때로 연예인 개개인의 특성과 선택에 따라 복귀를 재촉하기도 한없이 늦추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연예인이 돌아올 의지를 지니고 있느냐, 업계가 그를 기용할 의사가 있느냐보다 대중이 그를 다시 볼 마음이 있느냐이다. 대중이 비호감을 거두고 “그래, 계속 봐도 좋겠네”, 다시 관심을 키울 때 우리는 논란의 연예인이 재기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대중의 비호감이 호감으로 돌아서는 일, 절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동안 복귀에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은 재능이 충만하다는 것, 아직 우리가 못 봤고 더 보고 싶은 매력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질과 매력은 넘치지만 완전한 톱스타 반열에 오르지 않은 경우 상대적으로 재기가 쉽고, 데뷔 20년이 넘어 충분히 기량을 발산한 뒤임에도 논란 후 살아남았다면 대체 불가의 재능을 지녔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복귀의 신호탄이 되는 작품 또는 프로그램에서 부여된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칭찬보다는 구박, 화려하기보다는 초라한 외형으로 돌아온다. 특히나 배우가 그러한데, 외형적으로 멋지기보다는 후줄근한 차림이기 쉽고 내면적으로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상처를 입는다. 맘고생뿐 아니라 몸도 수난을 겪는다. 온몸으로 구르고 맞으며 당하고 또 당한다.


뻔한 ‘공식’이라고 해도, 그의 재능이 출중하고 아직 더 볼 매력이 남아 있다는 전제 아래서는 통한다. 논란을 겪은 이가 번지르르한 차림으로 등장해 온갖 환대를 받고, 성공 일로를 걷다 못해 여러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면 보기에 ‘불편’한 게 사실이다. 마치 우리의 ‘비난의 화살’을 받아 상처 입고 고생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볼품없는 차림으로 갖은 고초를 겪으면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여기에 그 배우가 연기를 기막히게 한다면, 복귀에 대한 ‘마음의 승인’을 얼른 찍게 된다.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름부터 흔들린 정체성 ⓒ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네임’(연출 김진민, 극본 김바다, 제작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의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한소희가 딱 그런 경우다. 조폭 딸 윤지우에서 마약수사대 형사 오혜진이 된 인물, 이름이 두 개인데 그 또한 본명이 아닐 정도로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를 온몸을 던져 연기했다.


오혜진처럼 배우 한소희 역시 단 한 치도 물러섬 없이 때리는 액션이든 맞는 액션이든 감당했고 전라의 정사도 아름답게 소화했다. 대한민국 영화와 드라마를 털어 이 정도로 강렬하고 아름다운 액션 전사가 있었던가, 자신의 정체성에 온몸으로 부딪혀 반응해낸 캐릭터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뜨거운 연기를 과시했다. 결정적으로, 원수를 위해 일해 온 자신을 자책하며 스스로 가슴을 치고 머리를 치는 장면이 있는데, 배우 전도연이면 이렇게 연기했을까 싶게 뼈에 금이 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조절 없이 가슴팍을 내리친다. 절박하고 애절하다.


한소희를 둘러싼 논란이 전대미문의 사건 수준도 아니었고 시간이 좀 지나기도 했지만, 복수를 위해 스스로 시한폭탄이 된 세 개의 이름을 지닌 인물을 온전히 표현해낸 배우 앞에 지난 과거를 들추기란 쉽지 않게 됐음은 명백하다. 그런 상황을 일군 건 다름 아닌 배우 한소희다.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했고 극 중에서 온갖 수난을 겪은 것도 주효했지만, 공교롭게도 윤지우와 오혜진의 거친 외형이 논란의 내용과 맞아떨어진 것도 ‘비호감 지우기’에 한몫했다.


지난해 제기된 논란 중 어머니의 빚 문제 관련은 본인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바로 사과해서 크게 불거지지 않았고, 대중의 놀라움과 실망 속에 도마에 오른 부분은 흡연 사진과 타투(문신) 등 다소 거친 이미지였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눈길을 잡아끌게 아름답고 도도했던 모습, 재벌가 딸 같은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도 달랐고 광고 속 청초하고 맑은 미모와도 전혀 달랐기에 충격이 컸다.


자연인 한소희의 진실한 모습이 무엇인지 알 만큼 오래 본 적 없으면서(오래 활동했다고 알 일도 아니지만), 짧은 기간 대중 미디어에 의해 익숙해진 이미지와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이가 ‘배신감’을 느꼈다. 배신감은 연기의 ‘진정성’으로 이어져 분노를 부추겼다. 그 고운 모습은 전부 ‘가짜였나’라는 의심, 배반에 대한 질책이다.


남보다 먼저 발견한 배우가 스타로 부상하면 내가 뭘 잘한 것 같아 내 일처럼 뿌듯하지만, 우리가 호평하고 아끼는 배우가 우리의 예상에서 벗어나면 우리의 안목이 틀렸다기보다는 그가 잘못했다고 여겨져 화가 난다. 우리의 사랑과 관심에 부응하지 않은 잘못, 호감과 애정의 크기에 비례해 배신감도 커진다.


한 단계 성장 가능성을 과시한 배우 한소희 ⓒ

윤지우 또는 오혜진의 거친 모습은 진정성 논란을 부르지 않고, 한소희의 열연은 배신감을 누그러뜨린다. ‘부부의 세계’ 속 여다경만이 아니라 ‘마이 네임’의 윤지우도 너끈히 표현하는 배우, 한소희는 단지 연기 잘하는 배우일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 상기된다. 따라서 여러 작품 속 모습이든 대세 인기 속에 다수 출연했던 CF 속 다양한 모습이든 모두 한소희에게서 나올 수 있는 여러 이미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만일, 한소희의 연기가 조금이라도 어설펐다면, 여다경은 평소 모습과 다른 ‘가짜’ 연기이고 오혜진은 평소 모습과 비슷해 훨씬 더 잘한 결과라는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 한소희는 이러한 오해나 착각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마이 네임’의 원톱 역할을 아주 잘했다. 박희순, 안보현, 김상호, 윤경호, 이학주 등의 배우들이 탄탄한 연기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지만, 한소희 없는 ‘마이 네임’을 상상할 수 없게 훌륭히 연기했다.


그 결과는 넷플릭스 ‘오늘의 한국 TOP 10’ 1위, 세계 3위의 인기로 나타나고 있다. ‘오징어 게임’으로 모은 세계인들의 K-콘텐츠를 향한 관심이 1회성에서 끝나지 않도록 붙들어 매는 역할을 ‘마이 네임’이 하는 데에 중추적 역할을 한소희가 했다. 핏빛 누아르에 이은 다음 작품, 또 다른 모습으로의 변신이 벌써 궁금해지는 배우, 한소희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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