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초점] ‘어른’이 실종된 사회, 윤여정·오영수가 보여준 근사함
입력 2021.10.19 14:01
수정 2021.10.20 09:10
7080할매·할배에 열광하는 MZ세대
요즘 사회는 ‘어른’이 실종된 시대로 불린다.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대립구조는 어느 세대에나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 ‘어른’의 자리에는 ‘꼰대’라는 멸칭만 남아있고 그들의 조언은 ‘라떼는 말이야’라는 잔소리로 치부된다. 기성세대도 나름대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지만, 어떤 어른이 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런데 지난 16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인상적인 광경이 목격됐다.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역으로 출연한 배우 오영수(77)의 말에 러블리즈 미주가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이 모습은,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 진짜 어른을 찾은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오영수는 “우리 사회가 1등 아니면 안 될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다. 그런데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한테 이겼다. 모두가 승자”라며 “진정한 승자라고 한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승자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특별한 고민은 없다. 욕심내지 않고 살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살면서 받았던 모든 걸 남겨주고 싶은 그런 생각이 있다. 쉬운 예를 들면 산속에 가다가 꽃이 있으면 젊을 땐 꺾어 갔지만 내 나이쯤 되면 그냥 놓고 온다. 그리고 다시 가서 본다. 그게 인생이랑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 그게 쉽지 않다”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오영수 배우의 모습에선 불현 듯 배우 윤여정의 모습이 스쳤다. 그는 “육십이 돼도 인생을 모른다. 나도 67살은 처음이다.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있나”라고 말하고, “나는 최고(最高), 경쟁이란 말이 싫다. 1등이고, 최고가 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데 모두 ‘최고’가 아닌 ‘최중’(最中)이 돼 같이 동등하게 살면 안 되나”라며 1등을 강요하는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전 세계 넷플릭스 콘텐츠 1위에 빛나는 ‘오징어 게임’의 주역 오영수, 그리고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조금은 자만해도 얄밉지 않을만한 자리에 오르고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위트 있는 소감을 내놓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말은 지금 사랑받고 있는 ‘어른’의 모델들이다.
두 사람 외에도 “젊은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나문희) “과거를 가지고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고치려 들면 안 된다”(신구) 등 진심 어린 조언으로 멘토의 역할을 자처하는 이들, 그리고 나이나 습관에 얽매이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는 유튜버 밀라논나(장명숙), 박말례 할머니 등에 MZ세대는 열광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부끄러웠던 자신의 과거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해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조언에는 ‘존중’이 바탕이 된다. 존중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과거를 공유하는 것, 그것을 자양 삼아 자란 다음 세대는 또 그 다음 세대의 ‘근사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