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큰별 지다…현장에서 본 이완구 [정도원의 정치공학]
입력 2021.10.15 05:30
수정 2021.10.15 01:13
질문 두려워 않고 항상 준비된 모습
자신과 주변에 대한 빈틈없는 관리
총선 때 이낙연에 맞선 충청의 구심
정치인이 '잘아진' 시대, 애통한 타계
14일 향년 71세의 일기로 타계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충청이 낳은 큰 정치인이었다. 자민련 원내총무·충남도지사·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거쳐 총리를 지낸 이 전 총리는 정치인들이 '잘아졌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 시대에 큰 정치를 펼쳐 현장기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자가 이완구 전 총리를 처음 담당하게 된 2014년 7월은 세월호 사고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의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여야 합의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항의를 의식한 당시 야당 새정치민주연합 강경파 의원들의 목소리에 엎어지고 깨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이 전 총리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 전 총리는 항상 '프레스-프렌들리'한 자세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박영선 당시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와 독대를 마치고 나서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하자, 현장기자들은 낙심한 채 휴대폰 녹음을 끄면서 발걸음을 멈췄다. 몇 걸음 걸어가던 이 전 총리는 뒤를 돌아보며 "그렇다고 기자가 따라붙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빙긋 웃었다.
총리로 지명된 뒤 가장 먼저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실을 찾았을 때, 우윤근 원내대표실 문전서 진을 치던 야당출입기자들 앞에 섰는데도 질문이 나오지 않자 "야당 기자들이 훨씬 좋다. 질문도 하지 않고…"라고 우회적으로 타박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기자의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질문이 나오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기고, 항상 국민을 향해 말을 할 준비가 돼있는 정치인이었다.
이완구 전 총리는 지금은 '명분싸움'을 위한 껍데기 단어로 전락해버린 '협치'를 실천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청문회를 통과한 이 전 총리가 총리가 돼서 다시 야당 원내대표실을 찾자, 야당인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청문회에서 공격당하는 이 전 총리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눈물을 글썽였을 정도였다.
일찍이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이 전 총리는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주변 관리에 만전을 기해왔다. 청문회를 취재하던 시절, 수십 년전 신상자료까지 빠짐없이 준비된 이 전 총리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들 병역 판정 경위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대병원까지 갔지만, 의사들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확언했다.
평소 관운(官運)에 자신감을 보이던 이완구 전 총리에게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것은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투쟁 끝에 무죄가 입증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고초와 좌절감은 한때 극복했던 혈액암이 재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총선 때 불리한 판세 속에서도 충청을 돌며 미래통합당 후보들을 지원유세하던 이완구 전 총리의 행보가 현장에서 목격한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김태흠 의원이 출마한 충남 보령의 시장에서,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5선에 도전하던 충남 부여의 터미널을 거쳐, 이장우 전 의원이 출사표를 낸 대전의 원도심까지 종횡무진하며 이 전 총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부여에 왔던 날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박수현 전 의원을 지원하러 온 날과 겹쳤다. 이완구 전 총리는 "내가 총리도 먼저 한 '선배 총리'인데, 이곳 충청에서 이낙연보다 작게 나갈 이유가 있느냐"고 맞섰다. 당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이 전 대표를 정면으로 맞받는 모습에서, 충청 정치권의 구심점으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이 전 총리의 의지가 읽혔다.
대권에 도전한다면서도 현장에서 조금만 불편한 질문이 나오면 "취재를 하는 것이냐, 취조를 하는 것이냐"고 인상을 쓰는 정치인, 대권에 도전한다는데도 검증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은 듯 자신부터 가족까지 주변 모두가 전혀 정리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 이렇게 '잘아진' 정치인들의 모습은 곧 이완구 전 총리의 타계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