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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큰별 지다…현장에서 본 이완구 [정도원의 정치공학]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1.10.15 05:30
수정 2021.10.15 01:13

질문 두려워 않고 항상 준비된 모습

자신과 주변에 대한 빈틈없는 관리

총선 때 이낙연에 맞선 충청의 구심

정치인이 '잘아진' 시대, 애통한 타계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총선 선거운동기간이었던 4월 10일, 충남 부여의 터미널 앞을 찾아 5선에 도전하던 정진석 의원 지원유세에 앞서 지역민들과 주먹악수를 함께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정도원 기자

14일 향년 71세의 일기로 타계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충청이 낳은 큰 정치인이었다. 자민련 원내총무·충남도지사·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거쳐 총리를 지낸 이 전 총리는 정치인들이 '잘아졌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 시대에 큰 정치를 펼쳐 현장기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자가 이완구 전 총리를 처음 담당하게 된 2014년 7월은 세월호 사고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의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여야 합의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항의를 의식한 당시 야당 새정치민주연합 강경파 의원들의 목소리에 엎어지고 깨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이 전 총리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 전 총리는 항상 '프레스-프렌들리'한 자세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박영선 당시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와 독대를 마치고 나서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하자, 현장기자들은 낙심한 채 휴대폰 녹음을 끄면서 발걸음을 멈췄다. 몇 걸음 걸어가던 이 전 총리는 뒤를 돌아보며 "그렇다고 기자가 따라붙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빙긋 웃었다.


총리로 지명된 뒤 가장 먼저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실을 찾았을 때, 우윤근 원내대표실 문전서 진을 치던 야당출입기자들 앞에 섰는데도 질문이 나오지 않자 "야당 기자들이 훨씬 좋다. 질문도 하지 않고…"라고 우회적으로 타박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기자의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질문이 나오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기고, 항상 국민을 향해 말을 할 준비가 돼있는 정치인이었다.


이완구 전 총리는 지금은 '명분싸움'을 위한 껍데기 단어로 전락해버린 '협치'를 실천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청문회를 통과한 이 전 총리가 총리가 돼서 다시 야당 원내대표실을 찾자, 야당인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청문회에서 공격당하는 이 전 총리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눈물을 글썽였을 정도였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총선 선거운동기간이었던 4월 8일, 충남 보령의 전통시장 앞을 찾아 3선에 도전하던 김태흠 의원 지원유세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정도원 기자

일찍이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이 전 총리는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주변 관리에 만전을 기해왔다. 청문회를 취재하던 시절, 수십 년전 신상자료까지 빠짐없이 준비된 이 전 총리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들 병역 판정 경위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대병원까지 갔지만, 의사들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확언했다.


평소 관운(官運)에 자신감을 보이던 이완구 전 총리에게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것은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투쟁 끝에 무죄가 입증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고초와 좌절감은 한때 극복했던 혈액암이 재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총선 때 불리한 판세 속에서도 충청을 돌며 미래통합당 후보들을 지원유세하던 이완구 전 총리의 행보가 현장에서 목격한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김태흠 의원이 출마한 충남 보령의 시장에서,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5선에 도전하던 충남 부여의 터미널을 거쳐, 이장우 전 의원이 출사표를 낸 대전의 원도심까지 종횡무진하며 이 전 총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부여에 왔던 날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박수현 전 의원을 지원하러 온 날과 겹쳤다. 이완구 전 총리는 "내가 총리도 먼저 한 '선배 총리'인데, 이곳 충청에서 이낙연보다 작게 나갈 이유가 있느냐"고 맞섰다. 당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이 전 대표를 정면으로 맞받는 모습에서, 충청 정치권의 구심점으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이 전 총리의 의지가 읽혔다.


대권에 도전한다면서도 현장에서 조금만 불편한 질문이 나오면 "취재를 하는 것이냐, 취조를 하는 것이냐"고 인상을 쓰는 정치인, 대권에 도전한다는데도 검증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은 듯 자신부터 가족까지 주변 모두가 전혀 정리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 이렇게 '잘아진' 정치인들의 모습은 곧 이완구 전 총리의 타계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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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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