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규제 금융시장 대혼란 ...MZ세대 직격탄
입력 2021.10.01 06:00
수정 2021.09.30 10:44
KB국민·하나 ‘보증금 상승분 이내’ 제한
5대은행 전세대출 잔액 120조원 돌파
대출자 10명 중 6명 MZ세대 ‘무주택자’
실수요자 대출로 꼽히는 전세자금대출이 규제 가시권에 들어왔다. 가계대출과 전쟁을 선포한 금융당국이 전세대출 규제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NH농협은행을 필두로 한도 축소에 나서며 금융권 전방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갑작스런 전세대출 제한으로 이사를 계획했던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전셋집을 구하기도 버거운 2030세대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세대출 규제가 임박하자 일선 은행 영업점에는 전세대출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전세대출이 중단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전세대출을 받거나,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신용대출도 미리 받는 경우가 늘었다. 이같은 금융시장의 혼란은 전세대출 증가율이 다른 대출에 비해 두드러지면서, 은행권이 전세대출 조이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5대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의 지난달 기준 전세대출 잔액은 119조9670억원으로 120조원에 육박했다. 이는 지난해 말(105조2127억원)대비 14.02% 증가한 것이다. 전체 가계대출 증가분에서의 비중은 51%이다. 같은기간 가계대출 증가율은 4.28%, 신용대출은 5.42%, 주택담보대출은 4.14% 수준이었다. 금융당국이 목표로 한 올해 가계대출 연간 증가율은 5~6% 수준이다.
증가율로만 따지면 이미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은행별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달 27일 기준 전세대출 증가율은 국민은행 19.5%, 신한은행 9.9%, 하나은행 17.1%, 우리은행 21.4%를 기록중이다. 올해 5대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이 130조원까지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같은 전세대출 증가 추세는 비정상적이라는 의견도 거세지고 있다. 올해 들어 전셋값이 꾸준히 올랐으나, 전세대출 증가율은 이를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KB리브 부동산에 따르면 전국 평균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달 기준 3억2355만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1.62%올랐으나, 같은기간 5대은행의 전세대출 증가율은 14.02%를 차지했다. 전세대출 금리가 주담대나 신용대출 등보다 낮은 만큼, 투기의 징검다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전세대출 규제를 심각하게 검토중이다. 은행들은 즉각적으로 선제 대응에 나섰다.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이 전세대출 취급을 일시 중단한데 이어 KB국민은행이 지난달 29일 전세대출 한도를 보증금 상승분 이내로 제한했다. 하나은행도 이달 동일한 규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가계대출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까지 전세대출 제한에 나서면서 나머지 은행들도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서 동참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투기 세력과 실수요자들의 구별이다. 당장 이사철을 맞아 전세 잔금을 치뤄야 하는 실수요자들은 이번 규제로 날벼락을 맞았다. 아파트 집단대출, 전세대출 등을 계획했던 사람들은 대출 중단으로 발을 동동구르고 있다. 다수의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전세대출 규제 관련 문의가 쏟아지며, “평생 무주택자로 살란 말이냐” “잔금을 못치뤄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도 집단대출 한도를 확대해달라는 등의 호소가 빗발치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인 무주택자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김상훈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 6월말부터 올해 6월말까지 5대은행의 전세대출 증가액(95조7543억원) 중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의 전세대출 증가율이 5.6배로 세대별 평균 증가율(2.8배)의 두 배를 차지했으며, 30대는 연령대별로 가장 큰 금액 증가분(38조8501억원)을 기록했다. 2030대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전세대출 규모는 59조원에 육박하며, 전체 증가액의 61.5%를 차지했다.
금융관계자 멘트 “주요 은행들이 전세대출 등 대출 규모 문턱을 높이면서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2금융권이나 사금융으로 몰릴 수도 있다”며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