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언론 해체 광풍인가
입력 2021.08.29 07:28
수정 2021.08.27 07:28
좋게 말할 때 알아서 하라고?
가짜뉴스 판치고 진짜뉴스 퇴출
권력 감시, 비판, 견제는 언론 책무
대통령은 걸핏하면 입장이 없다. 언론중재법 개정에도 관여하지 않아 입장이 없다고 했다. 꼭 있어야 할 곳에는 보이지 않고, 없어도 될 만한 자리나 함께하면 대통령은 꼭 필요한가.
세월호 사고 초기 7시간은 박근혜에게 ‘국정농단 부르카’를 덮어씌워 탄핵과 구속을 만들어 냈다. 언론, 국회, 특별검찰, 헌법재판소가 합작한 광풍은 일반 대중의 상상력으로는 불가능했다. 호텔 밀회부터 청와대 무당굿, 프로포폴 주사, 기(氣)치료, 성형수술, 숨겨 논 딸(정유라)에 이르기까지 온갖 가짜뉴스가 그 뒤를 받쳤다. 확대 재생산된 가짜뉴스는 기뻐 소리치며 날뛰는 무리에게 반복적으로 화답했다.
“아무런 실체가 없다”고 검찰이 결론 냈을 때는 기차가 떠난 뒤였다. 이후 특검은 삼성 말(馬) 대여와 최서원의 이권사업 등을 뇌물수수로 묶어 박근혜 최서원 이재용을 구속했다. 박근혜와 최서원은 법에 없는 ‘경제공동체’로 엮였다. 13개 죄목이 붙은 박근혜는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 추징금 35억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특검팀장 박영수는 얼마 전 물러났다.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포르쉐 렌트카와 명절선물을 받은 것 등이 들통 나서다.
여권이 언론중재법을 기어이 바꿀 태세다. 민주당보다 더 민주당 같은 열린우리당 김의겸을 상임위 야당 몫으로 끌어들인 기개를 보면 개정안 국회통과는 시간문제다. 가짜뉴스의 최대 수혜집단이 이제 와서 가짜뉴스 척결을 외치는 속셈은 뻔하다. 말처럼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가 비용과 시간 등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충분치 않아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면 박수를 받을 일이다.
좋게 말할 때 알아서 하라고?
핵심은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다. 허위, 조작보도 피해자에게 언론사가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했다. 여기에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조항이 붙었다. 사상 유례 없는 징벌적 손해액도 문제거니와 허위, 조작의 개념과 고의, 중과실 추론 항목은 명확하지 않아 판정이 지극히 자의적일 독소조항이다. 언론 상대 민사소송 당사자의 70%가 권력집단이라는 언론중재위원회 통계는 뭘 말하는가.
명예훼손 소송, 정정보도, 반론 청구 등의 제도는 지금도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면서 언론사의 매출액 기준으로 액수를 산정케 한 의도는 쉽게 읽힌다. 차제에 국회 다수의석으로 대못을 박아 놓자고 작정한 것이다. 좋게 말할 때 들으라는 신호나 마찬가지다. 이 기상천외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될 위험성이 있고, 손해액 대신 언론사 매출액을 기준하는 산정은 비례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지적들이다.
가짜뉴스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마음이라면 참으로 갸륵하다. 불행히도 현실적으로는 권력발(發) 가짜뉴스가 판치고 정작 진짜뉴스는 숨통을 틀어 막힐 것이 불을 보는 듯하다. 역사적으로 또 경험칙으로 봐 이건 필연이다. 극단적으로는 부정선거도 마음만 먹으면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인천과 경남 양산에서는 정치권과 대다수 언론의 침묵 속에 4.15총선 투·개표 부정의혹 시비가 들끓고 있다.
가짜뉴스 판치고 진짜뉴스 퇴출
언론 종사자들과 학계, 국내·외 언론 유관 단체는 일제히 언론중재법 개정의 위험성을 걱정한다. 정권연장과 이후 문재인 권력의 비리 은폐를 목표한 방탄장치라는 데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월성원전 폐쇄와 울산시장 하명수사, 가족 관련 잡음 등을 퇴임 후 지뢰밭으로 보는 건 거의 상식이다. 적폐청산과 검찰개혁, 사법개혁의 허구는 익히 봐 왔다.
문재인은 올해 한국기자협회 창립 47주년에 맞춰 이런 메시지를 냈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기둥이다. 누구도 언론의 자유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지당하고 천연덕스러운 그의 말씀은 늘 있었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했던 그는 언론자유 신봉자였다. 그런 제퍼슨도 집권 후에는 언론을 적대시하며 탄압에 앞장섰다.
권력과 언론의 불편한 관계는 숙명이다. 태생적으로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 견제하는 것이 존재의 의미다. 권력과 언론이 밀월하는 곳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필화(筆禍) 설화(舌禍)는 대개 진실을 보도하는 데서 생긴다. 옳지 않을 것까지 옳다고 하면 화가 닥칠 리 만무하다. 지금 같이 탈레반 식(式) 진영논리가 횡행하는 세상에서는 고전적 권·언관계마저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 감시, 비판, 견제는 언론 책무
“언론재갈법으로 정권말기 권력 비판보도를 틀어막아 집권연장을 꾀하는 것이 목적이다.” 윤석열의 말이다. 최재형은 ‘언론말살법’이라고 개탄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언론자유는 끝장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권력형 비리의혹을 덮어 버리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법부를 시녀로 만든 데 이어 언론재갈로 영구집권을 시도할 것이다.”
며칠 전 국회에서 ‘대통령이 드루킹을 알았느냐’는 질의에 청와대측은 이렇게 답했다. “드루킹 존재를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말씀을 못 드리겠다. 대통령은 댓글공작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댓글조작 최대 수혜자가 누군가’라는 물음에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드루킹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모르쇠로 일관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도 사과해야 한다’고 하자 “판결문에 대통령 책임에 대한 부분은 없다”고 대꾸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에 대해서도 그들은 “국회에서 하는 일이고 청와대가 관여 하지 않아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충성스런 부하들이 언론 쿠데타라도 일으켰다는 얘긴가. 정말이지 대통령 입장은 걸핏하면 없다. 김경수 확정판결과 재수감 때도 입장 없기는 똑같았다. 있어야 곳에는 없고, 없어도 될 만한 자리나 함께하면 대통령은 꼭 있어야 하나.
글/한석동 전 국민일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