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기본금융 진단 ①] ‘기본’ 없는 정책...“신용평가 기능 무력화”
입력 2021.08.12 07:00
수정 2021.08.11 18:19
'가계부채 관리'와 엇박자
개인 부실 상환·파산 우려
“돈으로 복지 해결 무리수”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파격에 가까운 ‘기본금융’ 공약을 발표했다. 이번 공약의 핵심은 ‘기본대출권’이다. 국민 누구나 최대 1000만원을 장기간 약 3%의 저금리로 대출받고, 마이너스 대출 형태로 수시입출금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낮은 신용도 때문에 청년층이 고금리 대부업계로 내몰려 신용불량자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전락하는 일이 없도록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금융에 가장 취약하고 제도 효용성이 큰 20, 30대 청년부터 시작해 전 국민으로 점차 제도를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이자, 금융정책으로 사회복지 문제를 접근하겠다는 새로운 시도이다. 그러나 재원 마련, 부실화 이후 대책, 도덕적 해이 등 비판도 만만치 않다. 본지는 이 지사의 기본금융 공약을 실효성 및 재원방안, 그리고 정책적 측면에서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이재명 경기지사가 야심차게 선보인 ‘기본금융’ 공약으로 금융권은 물론 정치계, 학계까지 들썩이고 있다. 기본금융은 ‘기본소득’, ‘기본주택’에 이어 이 지사가 세 번째로 내놓은 기본시리즈 구상이다.
금융취약계층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포용하겠다는 취지는 뜻깊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공감보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예상되는 가운데, 심각한 도덕적 해이 논란으로 기본적인 금융 체계마저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계·기업·정부 등 한국 3대 경제주체 빚 부담은 상반기에만 5000조원을 넘어섰다.
◆공약 살펴보니 “대출 권하는 사회?”
먼저 정확한 공약 내용부터 살펴보자. 기본금융 공약 전문 중 가장 논란이 일고 있는 ‘기본대출권’ 부분을 이 지사의 발표자료에서 발췌했다.
1) 기본대출권
기본대출권을 보장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포용금융, 공정금융을 실현하겠습니다.
국민 누구나 도덕적 해이가 불가능한 최대 1000만원(대부업체 이용자 평균 대출금 약 900만원)을 장기간(10~20년) 저리(우대금리보다 조금 높은 수준. 현재 기준 3% 전후)로 대출받고 마이너스 대출 형태로 수시 입출금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돈이라도 청년기와 장년기의 가치는 다릅니다. 따라서 기본대출은 금융에 가장 취약하고 제도 효용성이 큰 20~30대 청년부터 시작해 전 국민으로 점차 확대하겠습니다...(중략)
연체정보 등록·관리 등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장치를 갖추고 연체 해소에 필요한 최소한의 일자리를 보장하여 연체 및 신용불량자 전락을 막겠습니다.
우선 기본 대출은 현 정부의 정책방향과 역행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가계 빚은 9월말 기준 사상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1918조8000억원)을 따라잡았으며, 올해 1분기 가계부채는 1765조원으로 언제 터질지 못하는 시한폭탄이다. 금융당국은 연일 가계대출 관리를 금융권에 주문중이며, 한국은행 역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연내 기준금리를 인상할것이라는 강력한 시그널을 거듭 보내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기본대출을 5000만 국민 중 절반이 이용하면 250조원, 이 중 일부라도 부실화하면 가계부채의 폭팔성은 더 커진다”며 “기본대출을 하기 위해서 부실을 떠안아야 하는 은행은 국가에게 보증을 요구하고 금리차이를 보전해달라고 요구할 것인데 정부가 이를 거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차라리 재정으로 어려운 분들을 돕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전국민을 상대로 대출을 남발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을 할 때는 그 용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 지사의 공약은 마이너스 통장 접근 장벽을 낮춰, 대출을 의식주같은 필수요소로 전 국민에 권장하고 있다”며 “출발부터 잘못된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 부실 폭탄 부메랑 ‘빨간불’
더 큰 문제는 금융측면이다. 마통 부실 상환 혹은 개인 파산, 금융시스템 붕괴 초래 가능성이다. 금융권은 물론 학계, 금융권 출신의 정계인사들까지 질타를 쏟아내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본대출에서는 누가 손실을 부담할 , 부도발생 이후 예상 손실 정도가 얼마인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다”며 “부도가 났을 때 추심을 하게 되면 신용불량자가 양산될 것이고, 없던 것으로 하면 국가가 결국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가 채무자의 추심을 진행한 대표적 사례는 박근혜 정부가 운영하던 ‘국민행복기금’이다. 당시 박 정부는 저소득층 채무자의 빚부담을 덜고자 해당 제도를 도입했으나, 국가가 추심사업을 하며 취약계층을 쥐어짠다는 비판을 받았다.
금융연구원장 출신인 금융전문가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밑빠진 독에 한 없이 물붓는 것도 문제지만 돈을 안 갚을 수도 있게 상황을 만드는 것은 정말 나쁜 정책”이라며 “못 갚으면 국가가 대신 책임진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어도 (현재 대출 부실률과) 같은 숫자가 나올까, 천만의 말씀”이라고 질타했다.
◆ “국가가 금융시장 직접 개입”
국가가 금융시장에 직접 개입해 시장을 교란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야당내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불리는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기본대출은 금융시장의 위험평가 기능, 즉 금융시장의 가격 기능을 맘대로 비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민간사업자의 신용평가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가격신호를 왜곡해 경제를 근본부터 망가뜨리겠다는 것인지 그 배포가 놀랍다”고 우려했다. 그는 조만간 개인 유튜브를 통해 기본 대출 공약을 조목조목 반박하겠다고 예고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국은 단계별 금융시스템이 잘 구축된 나라이고, 최근에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비금융 데이터를 통한 신용평가나 중금리 대출 활성화 등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며 “이같은 기능을 무시한 채 기본대출을 강행한다면 되려 한국의 금융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우를 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재명 기본금융 진단 ②] 재원 마련 난망…"稅부담만 가중"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