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빌보드 곡처럼 만들어 줘”…‘글로벌 케이팝’ 외치는 韓가요계의 현실
입력 2021.07.09 14:01
수정 2021.07.10 20:41
태연 신곡 '위켄드', 도자캣 곡과 유사성 둔 갑론을박
오랜 시간 세계 대중음악의 주류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권 음악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케이팝(K-POP)이 독자 산업으로서 글로벌 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중심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활약이 있었다.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인 미국 입장에서도 케이팝 시장의 글로벌화는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뒤를 이어 블랙핑크, 세븐틴, 트와이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많은 아이돌 그룹이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면서 빌보드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아이돌 기획사들도 애초에 글로벌 시장을 노린 곡을 내놓고, 국내 리스너들도 아이돌 음악시장을 한정적 ‘팬덤’에 의해 굴러가는 문화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빌보드를 쫓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미권 음악이 아닌, 케이팝 그 자체로도 글로벌 팬덤을 매혹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아이돌 음악들에서 ‘표절’과 ‘레퍼런스 사용’ 사이 논란이 빚어지는 현상은 케이팝 자체 콘텐츠 제작의 한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6일 발매된 태연의 신곡 ‘위켄드’를 두고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도자캣(Doja Cat)의 ‘키스 미 모어’(Kiss Me More)와 ‘세이 소’(Say So)를 합쳐 놓은 듯 매우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창법은 물론, 음악 스타일 특히 뮤직비디오의 아트워크까지도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한 가요 관계자는 “이 곡을 단순히 ‘표절이다’ ‘아니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물론 음악 스타일과 창법, 아트워크 등 어떠한 곡에서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번엔 충분히 논란이 생길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한 면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가요계에서 표절과 레퍼런스 사용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앞서 걸그룹 스테이씨의 경우 데뷔곡 ‘소 배드’(So Bad) 뮤비 일부 장면이 미국 팝가수 마일리 사이러스의 ‘미드나잇 스카이’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제작사는 “철저한 사전조사 없이 진행한 부분에 대해 많은 팬들과 대중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태연과 같은 소속사인 에스파 역시 데뷔곡 ‘블랙 맘바’ 뮤직비디오가 독일의 비주얼 아티스트 티모 헬거트의 작품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레퍼런스는 말 그대로 참고, 참고문헌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음악에 적용하면 ‘작곡에 참고한 음악’ 정도로 사용된다. 실제 많은 작곡가들은 레퍼런스를 하나의 작곡 기법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적절히 이용하면 새로운 창작물로 인정받지만 과하면 표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예로 박진영은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을 레퍼런스로 ‘허니’를 작곡했지만, 이를 표절이라 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두 섬싱’을 ‘너무 많이’ 참고한 이효리 ‘겟차’는 표절 시비가 거셌다.
작곡가들은 이런 시비가 오가는 것 자체가 현재 케이팝 시장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중음악 작곡가 A씨는 “표절과 레퍼런스 사용은 과하냐, 과하지 않냐의 차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면서도 “많은 케이팝 가수들이 여전히 빌보드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해외음악을 참고하는 것을 넘어 시비가 불거질 정도로 사용하면서 자체 콘텐츠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작곡가 B씨는 “얼마 전 한 아이돌 기획사로부터 곡 의뢰를 받았다. 빌보드에 있는 한 곡을 콕 집어서 ‘이 곡처럼 만들어 달라’는 식으로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그런 요청을 여전히 받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케이팝이 글로벌화를 외치고, 해외에서도 케이팝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요청 자체가 케이팝을 깎아먹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데일리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