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성추행: 정치권부터 달라져야 재발 방지 가능

데스크 null (desk@dailian.co.kr)
입력 2021.06.08 06:12
수정 2021.06.07 07:59

재발 방지가 중요

군대만의 조치로는 한계

군대 이상의 조치가 더욱 중요

결국 정치권이 문제

재발 방지가 중요

공군에서 발생한 여중사 성추행 사건이 군인과 국민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서로 아는 동료 간에 낯 뜨거운 성추행을 했고, 주변의 다른 동료들이나 상급자 역시 그 여중사를 보호해주기는커녕 무마하거나 은폐하는 데 치중함으로써 결국 그녀에게 죽음 이외에는 선택이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3월 2일 사건이 발생한 이후 그 여군이 자살한 5월 21일까지 2개월 20일 동안 공군은 참모총장까지 보고하면서 조치하였지만, 사건의 진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여중사에 대한 보호조치도 제대로 강구되지 않았다.


급기야 그 여중사가 자살을 감행함으로써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엄정한 수사와 문책을 요구하자 공군과 군대가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로 사건 수사를 이관하고, 공군 참모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국민의 분노는 가라앉힐 생각에만 몰두할 뿐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에는 별로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발생한 사건에 대한 명백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더 바라는 것은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여중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런데 대부분의 국민은 지금 군이 부산을 떨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이르지 못하고, 또 얼마 지나면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 것으로 생각한다. 얼마 전에는 군에서 병사들의 식사가 부실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부산을 떨기도 했지만, 이 역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적다.


사실, 지금까지 군에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였지만, 모두 임기응변에 그치고 근본적인 대책은 강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또다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고, 또다시 한바탕 법석을 떨면서 몇 사람이 책임을 지는 유사한 형태가 반복되곤 하였다.

군대만의 조치로는 한계

불교에 연기법(緣起法)이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그 근원을 계속하여 파고 들어가 그것을 해결해야만 된다는 접근법이다. 즉 “왜 사람들은 늙고 죽을까(노사: 老死)?”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태어났기 때문(생: 生)”이다. 그다음에는 “왜 태어나느냐?”를 물어서 그다음 답을 찾는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질문을 계속하여 맨 나중에 도달한 답이 “어리석음(無明)”이고, 따라서 생사의 윤회를 해탈하고자 한다면 어리석음을 깨쳐야 한다면서 스님들이 참선하는 것이다.


불교의 연기법은 필자가 이렇게 쉽게 소개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내용이 아니지만, 선무당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면서도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피상적인 문제해결 방식에서 벗어나 연기법과 같은 방식으로 이번 성추행 사건의 근원을 추적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 이번 성추행 사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성추행과 관련한 교육이 미흡하고, 그것이 발생하였을 경우 조치하는 데 관련한 규정이 절차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으며, 특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상급자들의 인식이 미흡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남녀가 함께 근무하는 데 필요한 제반 사항을 잘 교육하고, 성추행이 발생하였을 경우 조처되어야 할 사항을 내규로 만들어서 생활화하며, 특히 지휘관들은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였을 경우 더욱 높은 경각심으로 조사 및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현재 군에서 당장 조치하고자 하는 사항일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지금까지 위와 같은 사항들이 미흡하지만, 어느 정도는 구비되어 있었을 것인데, 왜 그것조차 제대로 시행 및 준수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각자가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성추행이 보고되었을 경우 상담원이든 상급자가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여 정해진 조치를 했더라면 자살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군참모총장도 1개월 12일 후인 4월 14일 보고받았지만, 보고받고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조치하지도 않았다. 관련 요원들 중에서 제 직분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한 책임으로 공군참모총장이 사임을 한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성추행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을까?


셋째, 그렇다면 왜 군인들이 제 직분을 제대로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을까? 이 단계는 공군이 아닌 군대 전체의 차원으로 격상된다고 할 수 있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군대의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군대의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진급만 챙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군을 열심히 하도록 하는 하나의 통일된 주제가 있는가? 이전의 국방부장관도 그러했지만 지금 국방부장관도 모든 장병이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구심점을 제시하고 있는가? 매일 매일 이런저런 사건 사고를 처리하느라 더욱 바쁜 뿐 아닌가?

군대 이상의 조치가 더욱 중요

넷째, 그렇다면 현재의 군대가 왜 구심점을 갖지 못했을까? 그 대답은 자명하다. 군이 전투준비태세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의 본연의 임무는 전투 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투준비태세 충실의 요구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따라서 이것을 요구하기만 하면 군대의 모든 부분과 구성원들은 이를 위하여 헌신 및 매진하지 않을 수 없고, 당연히 강력한 구심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 한국군에는 전투준비태세가 강조되고 있지 않다.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고, 그렇게 하고도 별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훈련보다는 병사들의 관리가 중요하고, 일기가 불순하거나 조금의 사고 위험이 있어도 훈련을 중지한다고 한다. 부모들의 의견도 반영한다고 한다. 군인들에게서 듣는 바를 종합해보면 오늘 당장 싸울 수 있는 준비를 위하여 모든 사항을 점검하고, 훈련하는 모습은 상당할 정도로 사라진 것 같다. 행정 군대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다섯째, 그렇다면 왜 전투준비태세에 충실하지 않을까? 이 대답은 간단하다. “적(敵)”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싸울 대상이 없는데 군이 왜, 어떻게 전투준비태세에 충실할 수 있는가? 북한은 핵 무력을 증강하여 언제 우리를 공격할지 모르는데, 현재 우리 군은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지휘관들이 부하들에게 철저한 전투준비태세를 강조할 수 있겠는가?


세계 각국은 명백한 적이 없으면 가상적, 잠재적이라는 개념으로라도 적을 만들어 훈련하도록 한다. 이전 정부까지 군인들은 분명한 적이 있었고, 따라서 분석하여 대응 및 승리해야 할 대상이 있었다. 그래서 “훈련에서 흘리는 땀 한 방울이 전장에서 흘리는 피 한 방울을 절약한다”면서 혹서기 및 혹한기에도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훈련 잘하는 지휘관이 진급하는 방식이 통용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미연합훈련부터 없어졌고, 누구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복원시키지 않고 있다. 그렇게 되니 군복만 입었지, 군인다운 활동은 별로 하지 않고, 따라서 군대의 구심점이 없어지면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치권이 문제

여섯째, 그러면 왜 한국군에게 ‘적’이 없어졌는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그렇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방백서를 발간하면서 적을 표시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았는가? 평양까지 따라가서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했더라도 핵무기를 없앴다면 모르지만, 그것도 실패하지 않았는가? 북한은 핵무기를 가속적으로 증강하고 있는데 왜 정치권은 군대에 철저한 북핵 대비를 하라고 하지 않는가?


필자가 예비역이라서 군대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군의 통수권자라면서 군의 전력 증강 방향도 정하고, 군의 주요 보직 및 진급을 결정한다. 대통령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이름을 사용하여 그들의 생각을 군에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정치권은 다른 어느 정부보다 군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과 정치권에 묻고자 한다. 군의 북핵 대비 태세를 점검해본 적 있는가? 군의 전반적인 전투준비태세를 확인해본 적 있는가? 정말, 훈련을 잘하고, 전시에 싸워 이길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발탁하고 진급시키고자 했는가? 군부대를 방문하여 밥은 어떻게 먹고, 휴식은 어떻게 하고, 잠은 어떻게 자는지 몸소 체험해보고, 장교, 부사관, 병사들의 의견을 듣고자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군대에서는 이등병이 간첩을 사살해도 그 위의 지휘관과 참모들이 줄줄이 표창받는다. 동시에 이등병이 잘못해도 사안의 경중에 따라 그 위의 지휘관과 참모들이 줄줄이 책임을 진다. 그래서 공군 참모총장이 사임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사안에 따라 국방장관도 책임질 수 있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도 책임져야 할 경우도 없지 않다. 이등병이 잘해도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는 것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이제 정치권은 군에만 모든 멍에를 지울 것이 아니라, 스스로는 제대로 해야 할 일을 했는지, 적을 혼란케 한 책임은 없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격지 않아도 될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군대는 성추행이나 부실 식사와 같은 문제점들을 점점 개선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고치지 않는다면 군의 시정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인사권을 행사하거나 호통치는데 재미들이지 말고, 군이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위”한다는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여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 군은 금방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항은 군의 전투준비태세 미흡이다. 성추행이나 부실 식사는 계속 악화하는 과정에서 현재처럼 문제가 노출되어 시정되지만, 전투준비태세 미흡은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는 노출되지 않을 수 있고, 따라서 시정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군대의 적재적소 인사, 적에 관한 정보의 수집과 분석, 작전계획의 수립과 훈련, 적절한 보급 및 군수 등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온 국가가 떠들썩했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전쟁이 발생하였을 때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면 시정할 기회도 없이 패배하고 만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 군이 과연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인가? 진정한 국군통수권자이고, 진정으로 그가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참모라면, 이번 성추행 사건이나 병사들의 부실 식사가 대통령의 지지율이나 여당의 지지율에 줄 영향에 신경 쓰는 것보다 군이 과연 싸워 이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불교의 12연기법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시정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데, 필자는 그 근본 원인이 국방에 대한 현 정부의 잘못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글/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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