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수 캐스터의 헤드셋] '사기혐의 송치' 기대는 무리입니까
입력 2021.05.02 20:41
수정 2021.05.02 20:56
“미쳤죠. 뭐에 홀렸는지. 그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나봐요”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진짜 죽고 싶어요. 대체 내가 왜 그랬는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하는 생각입니다. 살다보면 아주 가끔은 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고 나서 뼈저리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지난 하루를 떠올리면 나만이 느끼는 크고 작은 실수들이 떠오릅니다. 내일은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실수와 후회는 반복됩니다.
최근 보도에서 접한 충격적인 뉴스.
“전직 프로야구선수 사기혐의로 송치”
30대 여성에게 2500만원을 빌린 뒤 1500만원을 갚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으며,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야구팬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밝혀진 사실만으로는 그간에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놀랄만한 뉴스임에 틀림없습니다.
사건의 당사자는 너무나도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1995년 프로에 데뷔해 2019년까지 24년 동안 KBO·NPB·MLB에서 활약했던 슈퍼스타이기에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물론 그 역시 프로야구 선수 이전에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실수도 할 수 있고, 그 실수가 반복될 수 있다고 하지만 1500만원에 사기혐의라는 것은 놀랍습니다.
분명히 뭔가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밀려오는 배신감에 열심히 모아 두었던 그의 유니폼과 싸인공 모두를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싶어졌습니다. 그가 프로선수로 24년간 벌어들인 수입을 추정해보면 일반인이 평생 모아도 만져보지 못할 어마어마한 액수일텐데.
프로야구 40년. 그 사이 엄청난 대기록과 박수 받을만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스타들이 큰 즐거움을 주었고, 그들의 선행과 다양한 형태의 기부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온기를 불어 넣기도 했습니다. 프로선수로서 팬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그들의 의식이 얼마나 성숙한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손가락질, 비난 받을만한 과오를 저지른 선수도, 사건 사고도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차마 입에 담기 부끄러울 정도의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철저히 반성하며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는 말을 들었으며 팬들은 그 말을 믿고 믿고 또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 프로야구. 그 야구를 직업으로 삼으며 팬들의 무한 사랑과 함께 고액의 연봉을 받는 프로선수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릴 때, 자연인으로 생활할 때, 늘 팬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겠으니 그라운드 안팎에서 무결점의 완벽한 인간이 되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프로 선수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그에 걸맞은 언행과 함께 책임감을 갖기 바라는 것이 팬들의 무리한 요구이며 욕심입니까.
해야 할 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 최소한 그 정도는 구분하고 행동하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이해할만한 실수,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잘못. 최소한 그 정도는 구분하고 행동하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선수 한 명의 긍정적인 언행이 열 명의 팬을 만들기도 하지만, 잘못된 언행이 백 명의 팬을 떠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근 여러 보도에서 프로야구의 위기와 관련된 소식들을 접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점점 말라가는 프로야구 시장, 팬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 간다는 기사, 수준이하의 경기력 등 긍정적인 소식보다는 조금은 어두운 뉴스를 접할 때 마다 암담할 뿐입니다.
중계방송 중 간혹 중계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자신의 스윙, 피칭을 할 필요가 있다”는 멘트. 맞습니다. 부담으로 인해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아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이야기는 그라운드에서 플레이 할 때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그라운드 밖에서는 프로선수로서 책임감과 부담감, 사명감을 느끼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그러한 의식과 자세가 품격 있고, 존경받는 선수로 만들어 주니까요.
물론 야구 선수가 야구 잘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겠지요. 그러나 팬들은 경기력은 물론이며, 인성까지 갖춘 선수를 보고 싶어 합니다. 인기 많은 선수를 넘어 팬들에게 존중받는 선수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기량이 부족했던 선수가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면서 뿌듯해 하는 팬은 그저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고, 응원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말이죠.
그러나 여러 가지로 논란이 되는 선수는 더 이상 응원할 수 없습니다. 프로야구 40년! 이제는 충분히 그런 시기가 됐습니다. 야구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스포츠니까요. 이제는 팬들도 선수들에게 존중과 배려를 받고 싶습니다. 무리한 바람은 아니겠죠?
글/임용수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