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부동산이지만 대선 땐 가상화폐 '2030표심 뇌관'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입력 2021.04.27 00:00
수정 2021.04.27 00:10

여당 '거래소 폐쇄' 후폭풍에 긴급진화…오로지 '표심논리' 접근

야당 '소득엔 과세' 방침에 모순 지적…"TF 꾸려 투자보호 논의"

암호화폐 비트코인 급락 등의 영향으로 가상화폐가 대부분 하락한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4.7보궐선거에 나타난 2030세대의 '성난민심' 불길이 부동산 문제에서 가상화폐(암호화폐) 이슈로 옮겨 붙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은 불붙은 청년 민심의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가상화폐 정책을 전담하는 별도 기구를 당내에 설치하기로 하는 등 긴급 대책마련에 나섰다.


특히 여당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암호화폐 9월이면 모두 폐쇄될 수 있다", "투자자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폭탄 발언 이후 청년 민심이 요동치자 서둘러 정책당국과의 선긋기를 하고 있다.


이광재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부가 보호해주지도 않고 자산으로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세금을 걷는 건 청년들이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이제 민관과 모여서 제도를 만들고 시스템을 짤 때"라고 말했다.


김병욱 의원은 이날 한국블록체인협회와 공동 개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가상자산 산업을 왜 진흥해야 하는지 좀 더 국민들을 설득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법적·제도적 틀을 갖추지 못하다보니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가상화폐에 세금을 부과하면서도 금융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줄이기 위한 방어논리를 찾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자신들이 통과시킨 개정 소득세법에 따라 내년부터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당장 여권 내에선 세금 부과 방침을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화폐로 번 돈에 세금이 붙는다. 대선을 2달 여 앞두고 거센 조세저항을 부를 수 있다.


'도박성격' 치부한 정부여당에 맞서…野 "우리가 보호하겠다"


이에 주호영 국민의힘 원대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정부여당이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있다"면서 "투자자는 보호할 수 없고 소득엔 과세를 한다는 논리로 2030세대 청년은 어처구니없는 배신감과 억울함을 드러내고 있다"며 정부여당을 겨냥했다.


주 원내대표는 "암호화폐를 제도화할지 투자자보호는 어떻게 할 지 등을 전문가와 논의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당내 태스크포스(TF)만들어 제도에 대한 연구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투자자보호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암호화폐 거래와 보유를 불법화하고 전면 금지하는 터키나 인도보다 무능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정부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이슈가 부동산 정책에 이어 새로운 민심의 '뇌관'으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가상화폐 논란이 단순히 경제이슈가 아닌 정치‧사회 문제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를 둘러싼 청년층의 분노는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공정이라는 키워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과거엔 월급만 성실하게 모아도 중산층으로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노력해도 내 집조차 마련할 수 없다"는 청년층의 박탈감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가상화폐 투자에 새로 뛰어든 10명 중 6명은 청년층이었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금융위원회를 통해 받은 가상화폐 투자자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는 249만5289명으로, 20대가 32.7%(81만6039명), 30대가 30.8%(76만8775명)였다.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막대한 유동성이 풀리며 자산랠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벼락거지'가 되지 않으려는 청년층의 몸부림에 가깝다. 경제학자 출신인 유승민 전 의원은 "2030세대는 엉터리 부동산대책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겼고,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내몰렸다"고 해석했다. '부의 계층 사다리'가 무너진 청년들에게 가상화폐 투자는 일종의 '심리적 출구' 성격이라는 것이다.


결국 가상화폐 투자를 '도박성격'으로 치부하며 규제하려던 정부 당국의 정책 방향은 청년층 민심에 불씨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개천용 기회를 박탈하려 한다"는 내용의 글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뒤늦게 민심수습하지만…바보야! 문제는 청년층 박탈감이야


가상화폐 시장을 그동안 방치한 것은 정부여당이었다. 국내 4대 암호화폐거래소의 올해 1~3월 거래액은 1486조원으로, 하루 평균 거래량이 코스피 시장 규모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급증했는데도 법과 제도는 전무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가상화폐 관련법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과 소득세법이 유일했다. 여전히 법적 지위도 모호한 상태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3월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을 통해 비트코인 등을 '가상자산'으로 정의했다. 경제적 가치가 있고, 거래가 가능한 무형의 자산이라고 본 것이다.


다만 '금융'이라는 지위는 부여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를 통해 소득이 발생한 경우 이를 '기타소득'으로 신고해야 한다. 기타소득은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이 아닌 복권 당첨금처럼 일시적·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을 통칭한다.


이는 주식으로 얻은 소득을 '금융소득'으로 분류하는 것과 확실히 차별화된 부분이다. 투자시장에서 가상화폐 거래소가 운영되고 있고,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결제수단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가상화폐를 '투기수단' 정도로 치부하고 제도권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선긋기에서 비롯됐다.


결국 정부여당이 논란에 따른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그간 진보로 분류되던 2030세대가 최근 부동층(浮動層)으로 떠다니며 대선의 향배를 가른 핵심 변수로 떠오른 만큼, 가상화폐로 불붙은 청년민심을 잡기 위한 여야의 이슈 쟁탈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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