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운드리 각축전 격화...삼성, 총수 부재 아킬레스건되나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입력 2021.04.26 06:00
수정 2021.04.26 11:24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파운드리 중요성 부상

TSMC·삼성에 인텔 재도전...SK하이닉스도 투자 시사

이재용 부회장 선제적 투자 선언에도 대응력 저하 우려

삼성전자 파운드리 생산라인 전경.ⓒ삼성전자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을 놓고 업체들간 각축전이 더욱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부동의 파운드리 1위 타이완 TSMC 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 반도체 1위 인텔도 파운드리 사업 재추진에 나섰고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집중해 온 SK하이닉스도 투자 확대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향후 다자구도 속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달 중순경 미국 현지 파운드리 공장 추가 투자 계획을 확정할 계획이다.


회사는 그동안 미국 현지에 170억달러(약 19조2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생산시설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하고 기존 공장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을 비롯해 뉴욕과 애리조나주 등 다양한 후보지를 놓고 주 정부들과 협의를 진행해 왔다.


기존 공장이 있는 오스틴이 가장 유력한 상황으로 텍사스주 정부와 막바지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내달 하순경 예정돼 있는 한·미정상회담에 맞춰 투자 계획이 발표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삼성전자가 내달 투자 계획을 확정하더라도 경쟁사들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동안 몇 달째 투자 검토를 하는 상황에서 경쟁사들은 앞다퉈 투자를 발표하면서 한발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TSMC는 이달 초 생산 확대를 위해 향후 3년간 총 1000억달러(약 113조원) 투자를 발표한데 이어 지난 22일 이사회를 통해 중국 난징 공장에 28억8700만달러(약 3조2000억원)을 투자해 28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생산라인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번 증설은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올해부터 새 28㎚ 공정 생산 라인에서 일부 양산을 시작하고 오는 2023년에 목표 생산량인 월 4만장의 웨이퍼 생산에 완전히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TSMC는 360억달러를 투입해 애리조나주 등 미국에만 5나노급 이하 첨단 반도체 공장 6곳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하는 등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 방안에 맞춤형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IDM) 기업 인텔도 파운드리 사업 재추진 선언과 함께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인텔은 지난달 23일 파운드리 서비스 사업부 신설과 함께 200억달러(약 22조6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두 개의 새로운 팹(공장)을 건설해 파운드리 시장에 재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과거 삼성전자·TSMC에 첨단공정 경쟁에서 패배했던 인텔로서는 다시 자웅을 겨루겠다는 도전으로 연내 유럽 신규 공장 설립 계획 발표도 예고하며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2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이 주관한 반도체 공급 부족 대책 온라인 화상회의에 참석한 직후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6~9개월 내에 실제 생산한다는 목표 아래 차량용 반도체 설계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겠다"며 정부의 방침에 자국 기업으로서 적극 호응할 뜻을 내비쳤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차량용 제품에서 시작된 품귀현상이 전자·IT용 제품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이러한 공급 부족 현상이 오는 2023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각 기업들은 파운드리 생산량 확대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에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D램 등 메모리반도체 비중이 절대적인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 투자 강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이러한 시장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SK텔레콤 사장)은 지난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IT쇼 개막식에서 "국내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업체들이 'TSMC 수준'으로 파운드리를 해주면 여러 벤처가 기술 개발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며 "이에 공감해 파운드리에 많은 투자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박 사장이 파운드리 투자와 관련해 공식적인 언급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주목되는 이유다.


SK하이닉스는 D램이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낸드까지 포함한 메모리반도체에서 90% 이상이 나오고 있는 반면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시스템IC)를 통해 하고 있는 파운드리 사업은 전체 매출의 2% 정도로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그동안 지나치게 메모리 의존적인 사업구조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왔던 터라 이번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파운드리 강화를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계기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가 국내 차세대 반도체 생산기지로 삼으려는 경기도 평택캠퍼스 3공장(P3) 생산라인에 대한 신규 투자계획이 올 하반기에 공식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현실화된다면 현재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밖에 없다.


P3는 연면적 70만제곱미터(㎡·21만평)로 단일 반도체 생산 라인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업계에서는 약 50조원에 달하는 투자 금액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오는 2023년경 양산이 예상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9년 4월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에도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당시 오는 2030년까지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며 10년간 총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최근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로 전 세계 각국에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 화두로 떠오른 상황을 감안하면 미래를 내다본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담긴 투자 발표였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현재 옥중 수감으로 총수 부재의 상황이 향후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시시각각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데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실기(失機)하면서 경쟁에서 토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는 그 어떤 분야보다 적기 대응과 선제적 투자가 중요한 산업”이라며 “반도체 수급이 전 세계적으로 국가적 차원의 이슈로 부상한 만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인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졌다”고 진단했다.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