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전쟁' 가까스로 합의했지만…LG-SK 내상 컸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1.04.11 16:33 수정 2021.04.11 16:34

2년 넘는 법적 분쟁 속 中 배터리 업체 '어부지리'

완성차는 배터리 자체 개발 속도…경영정상화 속도 내야

713일 만에 종지부를 찍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은 배터리 산업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번 합의로 LG에너지솔루션은 조 단위 합의금을 받게됐고, SK이노베이션은 미국 공장을 예정대로 가동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긴 소송 기간 동안 중국 배터리업체들의 영토 확장에 빌미를 줬고, 이는 글로벌 완성차들의 탈(脫) K배터리로 이어지면서 '득' 보다 '실'이 많은 결과를 초래했다.


업계에서는 양사가 합의에 더 속도를 냈더라면 수천억원으로 추산되는 소송 비용 등 경제적 손실을 줄이는 것은 물론, K배터리의 위상도 위협받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11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진행되고 있는 배터리 분쟁을 모두 종식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9년 4월부터 진행된 모든 소송절차는 종료된다.


양사는 이번 합의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현재가치 기준 총액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을 합의된 방법에 따라 지급하고 ▲관련한 국내외 쟁송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도 하지 않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소송 불확실성을 걷어냄으로써, 안정적으로 배터리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대규모 투자와 수주 역시 가능해지면서 공격적으로 시장 장악력을 높여갈 전망이다.


그러나 양사가 극적으로 '소송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 합의했지만,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G-SK가 2년 넘게 다투는 동안 글로벌 배터리 산업은 새 국면을 맞았기 때문이다. 최근 폭스바겐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이 대표적이다.


전기차 시장에선 파우치형·원통형·각형 배터리가 주로 사용되는데 파우치형은 폭스바겐·GM·현대차·기아가, 원통형은 테슬라, 각형은 벤츠·BMW가 각각 채택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 및 자체 배터리 비중을 늘리겠다고 '깜짝' 선언하면서, 폭스바겐에 파우치형 배터리를 공급해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폭스바겐은 지난달 15일 배터리데이 행사인 '파워 데이'를 열고 오는 2023년부터 각형 배터리를 적용해 2030년엔 생산하는 전기차의 80%에 장착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각형은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다. 세계 1위 중국 CATL과 BYD가 각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주력으로 생산해온 파우치형 배터리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고 중국 CATL, 스웨덴 노스볼트가 주력 생산하는 각형 비중을 높인다는 전략을 공식화했다.


대규모 투자를 예고한 폭스바겐과의 거래 축소는 LG-SK에겐 악재로,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중국 배터리업체에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각형 배터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이 절반에 가깝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탑재량 비중은 각형이 49.2%로 가장 많고, 파우치형 27.8%, 원통형 27.1%를 각각 기록했다. 파우치형 증가 속도가 높지만 각형과의 격차는 크다.


폭스바겐 사태를 통해 배터리 '기술 표준' 싸움은 한층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술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는 파우치형 배터리를 넘어서기 위한 차세대 배터리 개발은 물론, 원가를 낮추기 위한 기술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시장 선점을 위한 다양한 방식들을 내놓고 있다. 전기차 1위 업체인 테슬라는 작년 독일 배터리업체 ATW오토모티브를 인수하며 배터리 수직계열화 작업에 나섰다. 일본 도요타의 경우 전고체 배터리로 중흥을 꾀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유럽연합(EU)이 배터리 기술 자립을 위해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배터리 기술 개발 속도는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각형 배터리 선호도가 높아지고, 완성차업체들이 잇따라 자체 배터리 개발에 나서는 것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게 그리 달가운 상황이 아니다. 파우치형 배터리 기술이 선진화된 기술로 손꼽히고 있지만, 결국에는 가장 많이 선택받는 배터리가 미래 시장을 장악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배터리 시장에서 K배터리가 입지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할 경우, 도태는 시간 문제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따라서 양사는 극적 합의에 성공한 만큼 하루 빨리 경영정상화 및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수주잔고 150조원 이상을 확보하고 있고, 이를 소화하기 위해 연간 3조원 이상의 대규모 시설 투자가 진행중이다.


앞으로도 '초격차' 전략으로 글로벌 배터리 기업 1등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적기 투자가 필수적인 만큼 시장으로부터 적정한 사업가치를 평가 받아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사실상 중단된 미국 사업을 재개하고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이 필수 과제로 손꼽힌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LG·삼성·SK 등 배터리 3사는 리튬이온 배터리 뿐 아니라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위한 연구 개발을 진행중이며 이르면 2027년부터 결실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니켈 함량을 높이고 코발트 비중을 낮춘 'NCMA(니켈 코발트·망간·알루미늄) 배터리' 대량 생산을 앞두고 있다. 니켈 비중을 90%로 끌어올려 장거리 주행을 구현하면서도 안정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SK이노베이션은 니켈 함량을 90% 이상으로 높인 'NCM구반반(니켈 90% 코발트 5% 망간 5%)' 배터리 개발을 2019년 완료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 배터리가 탑재되면 전기차 주행거리가 700㎞까지 늘고 충전 시간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표준 기술을 놓고 자동차업계까지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LG-SK의 소송으로 업계의 우려와 피로감이 가중된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K배터리는 공동 연구개발(R&D) 등의 방식으로 초격차 기술 우위를 보임으로써 적극적으로 시장에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