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살린 저축성보험…이차역마진 부메랑되나
입력 2021.03.25 06:00
수정 2021.03.24 11:08
지난해 책임준비금 20조 돌파…5년 만에 증가 전환
저축성 상품으로 코로나 넘겼지만…재무 부담 가중
국내 생명보험사들이 훗날 고객들에게 보험금을 주기 위해 쌓는 책임준비금이 5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며 지난해 2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실적 부진이 우려되자, 책임준비금 부담에도 불구하고 저축성 보험을 집중 판매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생명보험업계가 원하던 실적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이로 인한 재무적 부담은 두고두고 어깨를 무겁게 만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5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24개 생보사들이 지난해 1~11월 적립한 책임준비금은 총 21조674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책임준비금은 보험사가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료의 일정액을 적립시키는 돈을 일컫는 표현이다.
아직 마지막 한 달 통계가 남아 있긴 하지만, 지난해 생보사들의 책임준비금 전입액은 이미 2019년(19조8688억원) 연간 기록을 넘어섰다. 생명보험업계의 연간 책임준비금 전입액이 증가세로 전환한 것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주요 생보사들의 추이를 보면 조사 대상 기간 삼성생명의 책임준비금 전입액이 6조9403억원으로 25.1% 늘었다. 한화생명 역시 3조215억원으로, 교보생명도 3조1802억원으로 각각 6.3%와 49.1%씩 해당 금액이 증가했다.
생보업계의 책임준비금이 불어나고 있는 배경에는 저축성 상품이 자리하고 있다. 저축성 보험은 미래에 정해진 이자를 줘야 하는 특성 상 책임준비금을 많이 쌓아야 하는 상품으로 꼽힌다. 그런데 생보사들이 이 같은 저축성 상품 판매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책임준비금이 다시 늘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생보업계가 저축성 상품을 통해 거둬들인 초회보험료는 지난해 1~3분기 5조3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4%나 증가했다. 초회보험료는 고객이 보험에 가입한 뒤 처음 납입한 보험료로, 보험업계의 성장성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다.
이런 책임보험금 압박에도 생보사들이 저축성 상품에 매달리는 이유는 실적 악화 우려 때문이다. 여전히 영업에서 대면 판매가 주를 이루는 생보업계는 지난해 불어 닥친 코로나19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했다. 또 코로나19를 계기로 현실이 된 제로금리 시대는 생보사들의 주름살을 한층 깊게 패이게 만들었다. 시장 금리가 낮아질수록 자산운용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수익률도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이처럼 갑작스런 코로나19 여파 속 생보사들이 저축성 보험에 주목한 까닭은 남다른 상품 특성에 있다. 저축성 보험은 가입 시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는 일시납 형태가 많아 단기간에 수익을 끌어올리기 적합한 장점이 있어서다. 이에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생보사들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3조134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
문제는 저축성 보험이 날이 갈수록 보험사의 위험을 키울 악재로 거론된다는 점이다. 특히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이 다가오면서 이런 걱정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2023년 IFRS17이 적용되면 현재 원가 기준인 보험사의 부채 평가는 시가 기준으로 바뀐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이 때문에 고금리 저축성 보험은 장기적으로 생보사에게 큰 재무적 부담을 안길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축성 보험을 기반으로 한 단기 실적 방어는 예전부터 생보업계에서 종종 쓰여 온 전략"이라며 "하지만 이제 생보사들이 IFRS17 실시에 따른 장기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시점이란 측면을 감안하면, 과도한 저축성 상품 확대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