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무리수에 가만히 있던 한명숙만 '의문의 2패'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입력 2021.03.23 19:55
수정 2021.03.23 21:37

모해·위증 의혹 수사지휘로 '절차적 흠결' 보완…한명숙 범법사실만 명확해져

법조계 일각 "박범계, 무리하게 검찰개혁 밀어붙이다 추미애 전철 밟을 가능성"

김종민 변호사 "대검회의 영상녹화 공개하면 한동수·임은정 검사 어떤 논리로 기소 주장했는지 알 수 있을 것"

박범계 법무부 장관(사진왼쪽)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자료사진). ⓒ데일리안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한명숙 사건' 수사지휘권 발동이 결국 무리수로 돌아가면서 여권의 우리 편 '한명숙 구하기'도 더욱 요원해졌다.


여권은 검찰의 직접수사 철퇴 등 검찰개혁의 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수수 모해·위증 교사 의혹' 카드를 집요하게 거듭 꺼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한 전 총리의 명예만 더욱 실추시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 장관은 지난 17일 모해·위증 교사 의혹과 관련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지만, 대검 부장단과 일선 고검장들은 회의 끝에 불기소(혐의 없음)를 다시 결정했다. 이에 박 장관은 22일 모해위증 의혹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합동감찰을 예고하고 "용두사미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앞서 이달 초 검찰이 한명숙 모해위증사건을 오랫동안 조사해온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을 배제하고 사흘 만에 사건을 무혐의 처리해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 장관은 사건 처리 과정의 공정성을 재점검하라는 수사지휘를 하게 되고, 13시간에 걸친 마라톤 논의 등 재심의 끝에 무혐의 최종 결론이 나와 '절차적 흠결'까지 보완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전 총리의 범법 사실만 더욱 명확해진 셈이다.


법조계는 여권이 '한명숙 구하기'를 고리로 무리하게 검찰개혁을 밀어붙이다 '자충수'를 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검찰의 치부를 들춰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정당화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역효과를 맞았다"며 "한명숙 구하기가 오히려 한명숙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됐고, 검수완박과 수사지휘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더욱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한 전 총리는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해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재심 및 사면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은 없다. 특히 지난해 5월 여권이 사건 모해·위증 의혹에 불을 지피자 "과거 사건이 다시 이슈가 돼 부담스럽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 전 총리가 한신건영으로부터 수수한 9억원의 정치자금 가운데 3억원은 확실한 물증이 있어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관 13명이 만장일치로 유죄를 인정했다.


나머지 6억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지만 '8 대 5'의 유죄 다수 의견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설령 재심을 해도 '완전 무죄'를 받아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얘기다. 아울러 사면을 추진하는 것은 유죄를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때문에 한 전 총리 입장에서는 재심이나 사면 그 어느 쪽도 확실한 실익을 담보하는 것은 없는 셈이다.


한편 박 장관이 합동 감찰 카드를 꺼내 든 것은 '한명숙 구하기 3라운드'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법적인 결정을 뒤집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수사 관행의 문제점을 들춰내 정치적 차원에서 한 전 총리의 명예를 되찾고, 이를 발판으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 검찰개혁의 명분을 세우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이렇듯 무리하게 검찰개혁을 밀어붙이다 역풍을 맞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한명숙 뇌물사건 수사의 문제점과 티끌을 어떻게든 찾아내 검찰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라면서 "'뇌물의 여왕' 한명숙 구하기에 올인하며 계속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박 장관이 계속 똥볼을 찬 탓에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당 지지율이 많이 하락됐을 것"이라며 "대검회의 영상녹화 기록을 공개하면 한동수와 임은정 검사가 어떤 논리로 기소 주장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인데, 합동감찰이다 뭐다 해서 국민들만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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