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메모리즈⑳] 나훈아·조인성·영탁·양지은…강진의 ‘로또 3송’
입력 2021.03.12 16:41
수정 2021.03.12 16:41
가수 강진의 얼굴은 하회탈 같다. 평생 웃어온 웃음이 주름이 됐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일찍부터 잘돼서 웃은 건 아니다. 강진을 만나면 언제나 웃고 있고 다시 돌아봐도 웃고 있다.
사실 1986년 노래 ‘이별의 신호등’으로 데뷔했는데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게 20년 뒤 개봉한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주연배우 조인성(병두 역)이 운전하며 부른 노래 ‘땡벌’(땅벌의 강원도 방언)이었다면, 쉽지 않은 20년을 보낸 것인데 그런 흔적이 없다.
가수 강진은 1994년 발표한 노래 ‘남자는 영웅’ ‘삼각관계’가 인기를 얻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니 ‘자력으로’ 시동을 걸었다. 데뷔 후 8년 만에 걸린 시동에 첫 번째 가속 페달을 밟아 준 게 ‘비열한 거리’(감독 유하, 제작 싸이더스,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의 조인성이다.
돈다발 쇼핑백을 보조석에 싣고 운전대를 잡은 조인성이 부른다. “오늘은 들국화, 또 내일은 장미꽃, 치근 치근대다가 잠이 들겠지.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기다림에 지쳤어요, 땡벌, 땡벌. 혼자서는 이 밤이 너무너무 추워요~”. 가수 강진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고, 흥얼대던 병두는 ‘난 이제 지쳤어요’ 부분부터 목소리를 높인다. 강진이 합창으로 힘을 실어 준다.
두 번째 가속 페달은 더디 찾아왔다. 다시 14년 뒤, 2020년 TV조선 ‘미스터트롯’ 본선 2차전 1대1 데스매치에서 영탁이 ‘막걸리 한잔’을 불러 자신도 1위를 차지하고 대선배 강진에게도 흥행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시청자들은 “아, 이거 들어봤어. 가수 강진 노래잖아, 이 노래 좋지. 영탁이 부르니까 또 다르게 신나네”, 흥겨워했다.
영탁의 ‘미스터트롯’ 준우승 뒤 선후배 가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땡벌’을 함께 불렀다. 영탁이 먼저 부르고, 강진이 이어 불렀다. 후배에게 우선권을 주는 게 사람 강진의 품성이다. 인기가 몰아치기 시작한 와중에도 선배와 라디오에 나가는 게 영탁의 인성이다.
세 번째 액셀러레이터는 금세 왔다. 1년 뒤 이어진 ‘미스트롯2’ 결승 2차전 ‘인생곡 미션’에서 제주댁 양지은이 ‘붓’을 불렀고, ‘미스트롯2 진’에 등극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었나, 명곡이다”, 감탄했다. ‘막걸리 한잔’과 마찬가지로 가수 강진의 노래임에 한 번 더 놀랐다.
결승전 2라운드 당시 강진은 평소대로 집에서 ‘미스트롯2’를 시청하고 있었다. 1라운드 ‘작곡가 미션’ 1위의 주인공 양지은이 자신의 노래 ‘붓’을 부르는 게 아닌가, 그것도 너무 잘 부르니 박수가 절로 나왔다. ‘진’으로 호명되는 순간, 강진은 2002 월드컵 영광의 순간들에 그랬던 것처럼 ‘괴성’을 질렀다.
“내 노래로, 강진 노래로 진이 되니까 내가 1등 한 것처럼 기뻤어요. 나도 모르게 펄떡펄떡 뛰며 괴성을 질렀지요. 그날 윗집, 아랫집 분들께 죄송했는데, 다 같은 마음인지 (층간소음) 연락은 없어서 감사했어요. 그날 밤 우리 집은 축제의 장이 됐어요, 그 정도로 기뻤습니다. 예쁘고 효성 지극하다는 후배가 노래는 또 어쩜 그리 잘하는지요. 좋은 가수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메모리즈’에 가수 강진을 택한 건 본인이 표현하듯 “내 인생에 로또가 되어 준 분들”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강진은 “정말 너무나 감사한 분들”이라고 고개를 조아리지만, 그렇게 하는 게 맞고 당연하지만, ‘좋은 일’의 배경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연들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먼저 노래 ‘땡벌’은 많이 알려졌다시피, 후배 강진이 선배 나훈아에 대한 감사한 마음에 기회가 될 때마다 얘기한 바와 같이, 가수 나훈아가 1987년에 발표한 곡이고 작·편곡료 10원도 받지 않고 강진을 위해 리메이크해 준 노래다. 노래 길이가 짧다며 가사도 더 쓰고, 늘린 가사에 곡도 붙이고, 강진의 기존 앨범을 청해 듣고 후배 가수의 가창 분위기와 스타일을 살려 노래를 만들고, 녹음 당일 찾아와 한번 들어보라며 불러 주고, 여러 번 들으면 모창하게 된다고 가이드 녹음을 바로 지웠다. 대단한 후배 사랑이다. 자신의 곡을 쉽사리 주지 않기로 유명한 가황 나훈아가 이런 정성을 들인 배경이 있다.
강진은 원래 나훈아의 ‘땡벌’을 좋아했다. 좋아서 무명 시절 행사를 가면 ‘땡벌’을 불렀다. 수많은 인기곡을 낸 나훈아의 노래 중 ‘도대체 왜 이 노래가 인기를 못 얻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강진은 ‘땡벌 전도사’가 되어 열심히 부르고 다녔다. 부를수록 좋았고, 내 노래로 부르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노래’에 욕심 많고, 좋은 곡 받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강진은 ‘감히’ 나훈아의 연락처와 거처를 수소문해 찾아갔다. “왜 신곡이 아니고 ‘땡벌’이냐”는 나훈아의 질문에 “저는 이 노래가 좋고 꼭 이 노래로 인기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답했다. 자신의 명곡을 알아본 강진의 안목과 진심, 겁도 없이 ‘노래를 달라’는 열정이 통했다.
강진표 ‘땡벌’의 시작에는 선배 나훈아의 도움이 컸다면, ‘막걸리 한잔’과 ‘붓’의 탄생에는 가수 강진의 공이 훨씬 커진다. ‘땡벌’로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팬들과 대중에게 좋은 노래를 선물하고 싶었던 강진은 기존에 나와 있던 곡들을 섭렵했다. 그리고! 찾아냈다. 가수 황진이의 ‘가락지’ 노래가 너무 좋았다, ‘상사화’도 좋았다. 그 노래들을 작사, 작곡한 분을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살펴보니 가수 장윤정의 ‘남자가 필요해’, 박현빈의 ‘모래시계’(작사), 김큰산의 ‘갑이야’, 손빈의 ‘그물’, 유지나의 ‘김치’ 등을 작사, 작곡한 실력파 류선우였다.
“찾아갔지요. 제게 좋은 노래 달라고 부탁드렸지요. ‘땡벌’로 큰 사랑 받았잖아요, 앨범 만들되 서브 곡들도 다 타이틀 노래처럼 좋은 노래 담고 싶더라고요. 작품성 있다고 할까요, 우리 인생의 맛과 멋을 담은 노래, 위안을 드리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그런 제 마음 그대로 가사부터 곡까지 류선우 작곡가님이 정성을 쏟아 주셨어요. 그래서 한 앨범에 ‘막걸리 한잔’도 ‘붓’도 다 들어 있는 거예요. 그 외에도 이호섭, 이철민 작곡가님이 주신 좋은 노래 많아요. 너무너무 감사하지요.”
가수 강진에게 노래 ‘땡벌’을 준 나훈아와 부른 조인성, ‘막걸리 한잔’을 가수 인생을 바꿀 경연의 중요한 무대에서 부른 영탁, ‘미스트롯2’의 진을 결정하는 마지막 무대에서 ‘붓’을 부른 양지은은 ‘로또 같은 행운’, 인생곡을 안긴 이들이다. 더욱 중요한 건, 행운은 그냥 오지 않는다,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