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 3법’으로 본 미래 기업환경…“소송에 감옥가거나 투기자본 먹잇감”
입력 2020.12.09 11:29
수정 2020.12.10 08:18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상임위 통과…재계 강력 반발
경제계, 소송·고발 남발 유도…투기자본 공격에 무장해제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안 등 ‘기업규제 3법’이 모두 지난 8일 소관 상임위를 통과하면서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압도적인 의석을 가진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양상이라 국회 본회의 통과도 기정사실화 돼 있어 기업들은 기업규제 3법의 폐해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감사위원 선임규제 강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이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포함된 ‘내부거래규제 대상 확대’ 등은 모두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지배구조를 뒤흔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감사위원 선임 규제 강화의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이나 적대세력의 이사회 진입 시도시 대응력을 무력화시키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불려왔다. 감사위원 중 최소 1인은 다른 이사와 분리해 별도 선임하고, 분리선임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일정비율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당초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해 최대 3%로 제한하는 안에서 각각 3%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다소 완화됐으나, 여전히 우리 기업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이 조항이 재계의 우려를 사는 가장 큰 배경은 외국계 투기자본이 이사회 진입을 시도할 경우 기업이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국내 시총 상위 10대 기업의 외국계 지분 비중은 평균 38.1%에 달한다. 이 중 60~70%만 결집해도 25% 내외의 의결권 확보가 가능해진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에 허용되는 의결권이 합산 3%가 됐건 각각 3%가 됐건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외국계 펀드 등이 추천하는 이사가 이사회에 진출할 경우 이사(감사위원)의 정보 접근 권한이 큰 만큼, 기술, 투자계획 등의 정보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사회 안건 상정을 지연시키거나, 배당 확대 같은 단기적 전략에 치중할 우려도 크다.
지난 2018년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 2.9%, 현대모비스 2.6%, 기아차 2.1% 등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뒤 지난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추천, 배당 확대 등을 안건으로 요구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엘리엇이 현대차(4조5000억원·우선주 포함 5조8000억원)와 현대모비스(2조5000억원)에 요구한 배당액은 이들 회사의 전년도 영업이익을 훌쩍 넘기는 금액으로, 해외 투기자본 특유의 ‘먹튀’를 노린다는 지적이 일었었다.
엘리엇이 현대차의 사외이사로 추천한 로버스 랜달 맥귄은 수소연료전지를 개발, 생산 및 판매하는 회사인 발라드파워스시템 회장으로, 그의 사외이사 선임은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현대차의 기술을 통째로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현대모비스 사외이사로 추천한 로버트 알렌 크루즈는 중국 전기차 업체인 카르마의 CTO(최고기술책임자)로, 이 회사는 현대모비스와 거래 관계가 있는 회사다. 한 사람이 두 회사 임원 지위를 겸임할 경우 상호 이해상충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에 대해서까지 책임(손해배상)을 추궁하는 소송을 가능토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도 기업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는 조항이다.
재계에서는 외국 투기자본 등 외부세력이 다중대표소송제를 위협소송 수단으로 이용해 자신들의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방편으로 삼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정 기업의 주식을 저렴하게 매입하려는 의도로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하거나, 투기 세력들이 자회사를 흔든 후에 모회사를 어렵게 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자회사를 10개 이상 보유한 코스닥 상장회사의 경우 소송 요건인 0.01%의 지분을 취득하는 데 드는 비용이 평균 7830만원에 불과하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 따른 소송 남발은 우리 기업들의 비상장 자회사를 통한 안정적인 미래 전략적 투자 실행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조항은 정부가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중소·중견기업에 피해를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상법상 자회사가 있는 상장회사 가운데 중소‧중견기업의 비율은 86%(959개)에 달하며, 이들이 모두 다중대표소송에 노출된다.
자회사의 독립적 책임경영을 저해한다는 점도 문제다. 자회사 주주들의 동의와 이사회 결의를 거친 사항에 대해 모회사 주주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자회사 이사의 책임 범위와 이해관계에 갈등과 상충 소지가 발생한다.
주주제안권, 주주총회 소집청구권, 이사해임 청구권 등 소수주주권 행사요건을 완화하는 조항도 본래 취지와 달리 투기 세력의 단기적 공격 가능성 높이는 독소조항으로 지적된다.
상장회사의 경우 6개월 보유요건이 해제됨에 따라 지분만 확보하면(3일내) 소수주주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공정거래법 중 내부거래 규제 대상이 되는 상장 계열사 기준을 ‘특수관계인이 30% 이상 지분을 보유’에서 ‘20%이상 지분 보유’로 확대하고, 규제대상 계열사가 50% 초과 지분을 보유한 다른 계열사도 규제대상에 포함시키는 조항도 여러 가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우선 내부거래 규제 제도가 시행(2014년)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판단 기준이 법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모호한 상황에서 규제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기업의 불확실성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은 행정편의적인 접근이라는 지적이 많다.
여기에 계열사간 거래시 경쟁입찰에 준하는 방식을 요구함에 따라 과도한 거래비용이 발생하고, 계열사간 거래의 장점이 대폭 감소하는 부작용도 있다.
특히 50% 초과 지분 보유 계열사까지 규제 적용시 상법‧공정거래법상 각종 규제 부담이 복합적으로 가중되면서 산업 생태계적 경쟁력 훼손이 불가피하다.
50% 지분 보유를 기준으로 내부거래규제 대상에 신규 편입되는 것 뿐만 아니라, 모회사 주주에 의한 다중대표소송 대상(상법 개정안 추진 중)이 되는 등 규제 부담이 가중되면서 기업의 분사, 합작투자 등의 걸림돌로 작용된다.
내부거래규제 대상이 확대돼 계열사와의 거래가 어렵게 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국내기업이 없는 경우에 외국기업으로 거래 물량이 이전될 우려도 있다.
이 조항은 주요 기업들의 경영권을 뒤흔드는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대주주가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해 규제대상에 포착되지 않도록 지분을 매각하면 주가 하락은 물론 경영권이 취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신규 설립되거나 기존 지주회사에 새로 편입되는 자회사·손자회사의 경우 보유해야 하는 의무지분율을 상장사 30%, 비상장사 50% 이상으로 각각 기존보다 10%포인트씩 상향하는 조항도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 조항은 신규 자회사 설립 및 편입 소요 자금을 증가시켜 국내 신규 자회사 설립 위축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업내 신 사업부문을 신설하거나, 사업 다각화를 위한 분사, 합작투자 등에 나서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특히 일반지주회사의 77.3%를 차지하는 중소‧중견기업을 중심으로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기준 일반 지주회사 163개 가운데 126개가 중소‧중견기업 소속이었으며, 특히, 자산 1조원 미만 기업이 117개로 대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