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일의 역주행] 이대호 판공비 논란, 6000만원 때문이 아니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0.12.05 07:00 수정 2020.12.05 09:08

이대호 회장 "판공비 인상은 취임 전 결정"

저연봉 선수들 대변해야 하는 선수협의 본질

지난 두 시즌 간 프로야구 선수협회장을 맡았던 이대호의 ‘판공비 인상’ 논란이 비시즌 프로야구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최근 일부 매체에 따르면, 이대호는 선수협회장에 오를 당시 기존 2400만 원이던 판공비를 스스로 6000만 원으로 올려 논란을 야기했다고 보도했다.


이대호는 즉각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판공비 인상은 회장에 취임하기 전 결정된 사안”이라며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회장에 올랐어도 인상된 액수를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 2012년 박재홍 전 회장이 투명한 자금 흐름을 지향하기 위해 마련한 법인 카드 사용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이어진 관행이었다”며 사과했다.


선수협회장은 500명이 넘는 프로야구 선수들을 대변하는 자리다. 물론 “협회장이 되고 보니 KBO와 대등한 위치가 아니었다. 듣는 입장이었다”는 이대호의 말처럼 선수협은 정식 노조로 인정받지 못해 많은 고충이 따른다.


이렇다 보니 언젠가부터 선수협회장은 선수들이 꺼리는 자리로 인식됐다. 열심히 일을 해도 티가 나지 않고, 성과를 이루기도 쉽지 않았다. 2017년 이호준 회장이 물러나고 이대호 회장이 오르기 까지 2년간 공석인 이유도 이와 궤를 함께 한다.


그럼에도 이번 이대호의 기자회견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선수협의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이대호 회장 본인부터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대호 회장이 취임하기 전부터 선수협은 약자를 대변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 보장을 위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FA 제도 개선안이 나왔을 때 선수협은 KBO(한국야구위원회) 및 각 구단들과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당시 선수협은 KBO가 제시한 최저 연봉 인상안과 등급제를 거부했는데 이유는 FA 총액(80억 원) 상한제 도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FA 자격 조건을 따내는 선수는 전체 프로야구 선수들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며 80억 원 이상의 초고액 몸값은 더더욱 비중이 적다.


올 시즌 KBO 발표에 따르면, 기존 선수 512명에 신인선수 46명을 더해 총 558명(외국인 제외)이 등록됐다. 512명의 연봉 총액은 739억 7400만 원이며 최저 연봉(3000만원)을 받는 신인들까지 더하면 총 752억 6400만 원이 전체 선수들의 몸값이다.


평균 연봉은 1억 4000만 원이 넘지만 이들 중 억대 연봉자는 30%가 조금 넘는 161명이며 80억 원대 계약을 따냈거나 가능한 선수로 범위를 더 좁히면 15명 이내로 줄어든다. 즉, 극심한 피라미드 구조로 이뤄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력이 곧 연봉인 프로의 세계에서 이와 같은 구조는 당연하며 모두가 납득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선수협의 설립 목적이 저연봉 선수나 불이익 당한 이들을 감싸주고 어루만져주는데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결국 지난해 선수협은 초고액 몸값 2.7% 선수들의 수입을 보장하기 위해 억대 연봉에 미치지 못하는 저연봉 397명의 기대를 저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KBO와 구단 측이 먼저 제시했던 최저연봉 인상안은 결국 전체 선수들의 표결에 부쳐졌고, 당연히 가결로 이어진 ‘웃픈’ 사연으로 남고 말았다.


이대호 측의 설명대로 선수협회장을 무보수로 일할 필요는 없다. 연 판공비가 6000만원이든 6억 원이든 사용처가 투명하고, 선수협회장으로서 저연봉 선수들의 고충을 덜기 위해 노력했다면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데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공감한다.


선수협의 시작이었던 고(故) 최동원은 현역 생활 당시 이 모임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보복 트레이드를 당했다. 2001년 우여곡절 끝에 선수협이 창설됐고, 이때에도 많은 선수들 간의 반목과 보복 트레이드가 있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선배들의 뜻이 이어지고 있는지, 선수협 스스로 돌아볼 때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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