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 눈치보는 금융당국…'공매도 재원 20배, 불법엔 징역형'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입력 2020.12.04 06:00
수정 2020.12.03 16:40

강력한 처벌 방침에 개미도 '환영'…규제 일변도에 시장위축 우려도

文대통령 "동학개미운동 증시 지켜" 발언에 금융당국 부담 더 커져


금융당국이 내년 3월 공매도 재개를 앞두고 제도 개선 방안을 꺼내며 동학개미의 표정 살피고 있다. 공매도가 그동안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만 접근할 수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판을 받아온 만큼, 개인투자자에게도 문턱을 낮추겠다는 게 개선방안의 기본 방향이다. 여기에 불법 공매도에 대해선 강력한 처벌로 철퇴를 예고했다. 이 같은 방침이 "공매도 폐지"를 외치는 동학개미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는 지난 2일 불법 공매도에 대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부당이득액의 3~5배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동안 불법 공매도를 하거나 위탁 또는 수탁을 한 경우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불법 공매도 처벌 수위는 금융위원회가 강조하는 '글로벌 스텐다드'에도 맞지 않는 수준이었다. 미국이 불법 공매도에 대해 500만달러 이하 벌금 또는 20년 이하 징역형이라는 무거운 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국도 무제한 벌금 부과, 프랑스는 영업정지 외에 1억 유로나 부당 이득의 1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에 금융위는 개정안 심사 과정에서 불법 공매도 사전 방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주문 금액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병욱·김한정·박용진·홍성국 의원과 김태흠 국민의힘 의원,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병합한 것이지만, 금융위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란 설명이다.


아울러 개인이 공매도에 활용하기 위해 빌려주는 주식(대주) 규모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공개됐다. 이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자 비중은 지난해 기준 65%에 달하지만, 공매도 거래액 중 개인 비중이 1%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투자자별 공매도 비중을 보면 코스피에서 외국인이 59.1%, 기관이 40.1%였고, 코스닥도 외국인(74.2%)과 기관(24%)이 압도적이었다.


기관의 경우 한국예탁결제원·한국증권금융 등을 통해 낮은 수수료로 주식을 빌려 공매도를 할 수 있는데다 상환기간도 길고 종목도 다양한 반면 개인은 증권사를 통한 대주 거래만 되고, 빌릴 수 있는 종목도 한정적이다. 개인투자자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이에 한국증권금융은 2일 '개인대주 접근성 개선' 토론회에서 개인 공매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주활성화 전담팀을 구성해 대주를 취급하는 증권사를 늘리고, 대여 주식 규모를 현재의 약 20배인 1조4000억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증권사가 신용융자 담보 주식을 대주에 활용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文대통령 "동학개미가 증시 지켰다" 발언에 금융위 '부담백배'


금융위는 이날 토론회 내용 등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의 의견과 시장 여론을 종합해 공매도 개선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당장 금융위는 개인투자자들의 반응을 살펴야하는 부담도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동학개미 운동에 나서며 우리 증시를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동학개미를 직접 거론하며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입장에선 '동학개미 눈높이를 맞추라'는 지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언이다. 앞서 금융위가 공매도 금지기간 연장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지난 7월에도 문 대통령이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투자자들의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당부했고, 곧장 공매도 금지기간 추가 연장 결정으로 이어졌다.


이번 방안을 두고 증권업계와 개인투자자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공매도를 폐지해야지 처벌 강화한다고 되겠나"라는 반응이 여전하지만, 개인의 공매도 진입 문턱이 낮아지고 불법 공매도에 대한 퇴출 수준의 처벌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다.


다만 시장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규제 일변도 기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매도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제도인데다 '하락장의 주범'이 아닌 정교한 투자기법 가운데 하나인데 금융당국이 동학개미 눈치를 보느라 시장에 미칠 부작용 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참여가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 김태완 한국증권금융 기획부장은 "공매도는 주가 하락시 원금까지만 이익을 볼 수 있고, 주가가 상승할 경우 원금 이상 손실이 가능한 만큼 일반 주식거래보다 위험하다"며 "사전교육 의무 이수, 투자자 역량과 유형에 맞춘 차입한도 설정, 담보비율 기준 설정 등 투자자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강화와 개인 공매도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이 동시에 추진되는 것은 제대로 된 방향"이라며 "거래대금 기준으로 과징금을 매기는 것은 앞으로 불법 공매도에 대해 철퇴를 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읽히는 만큼 공매도 악용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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