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침묵이 '사면초가' 자초…남은 선택지 거의 없다
입력 2020.12.02 04:00
수정 2020.12.01 21:01
법무부 감찰위·법원 모두 윤석열 손 들어줘
추윤 갈등 관망·징계 명령 묵인한 文에 비판
윤석열 자진 사퇴 설득 가능성 있지만 희박

문재인 대통령이 이른바 '윤석열 정국'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형국이다. 법무부 감찰위원회에 이어 법원도 윤석열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문 대통령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문 대통령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
1일 법무부 감찰위는 윤 총장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직무 배제 및 징계 청구 명령이 부당하다고 만장일치 결론을 내렸다. 법원도 윤 총장이 추 장관을 상대로 신청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고,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여부와 수위를 논의할 검사징계위원회도 윤 총장의 요청에 따라 2일에서 4일로 일정을 변경했다. 법무부 징계위의 당연직 위원인 고기영 차관까지 징계위가 부당하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추 장관은 물론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을 장기간 바라보기만 하고, 추 장관의 윤 총장 징계 명령을 사실상 묵인한 문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게 됐다는 해석이 많다. 청와대가 이날 법원 결정 및 윤 총장 복귀와 관련해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은 것도 셈법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장 문 대통령의 전날 검찰을 겨냥한 '집단 이기주의' 발언이 비판에 직면했다. 문 대통령은 '공직자의 마음가짐'을 언급하면서 "소속 부처나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받드는 선공후사의 자세로 격변의 시대를 개척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검찰의 추 장관 명령에 대한 반발을 '집단의 이기주의'로 비판했다고 해석됐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검찰을 겨냥해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판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곤혹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문 대통령이 검찰 전체가 들고 일어나는 상황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정가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윤 총장의 자진 사퇴를 '설득'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본다. 문 대통령과 정 총리가 추 장관을 잇달아 면담한 것도, 윤 총장의 자진 사퇴를 이끌기 위해 추 장관의 동반 퇴진을 논의한 것으로 해석되면서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징계위가 연기된 건 문 대통령에게 윤 총장을 설득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며 "여권 일각에서 '동반 퇴진론'으로 퇴로를 열어준 것도 상황에 대한 판단이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총장을 자진 사퇴시키려면 징계위를 취소하고 추 장관의 거취를 동시에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野 "이 지경까지 오도록 손 놓은 文 제대로 사과해야"
다만 이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지면서까지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모양새를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라'고 한 자신의 발언을 뒤엎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신 교수는 "문 대통령 입장에서 윤 총장 사퇴를 설득하기 힘든 건 '임기를 지키라'는 자신의 발언 때문"이라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도록 손을 놓고 있던 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 사태에 대해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도 "헌정사상 초유의 법질서 유린사건이 발생했는데 적당히 호도하다간 국민이 당신까지 아웃시킬 수 있음을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