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남과여’, 반세기가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
입력 2020.11.19 16:07
수정 2020.11.19 16:08
1966년 개봉해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
가을이면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울긋불긋 단풍이 멋들어지게 물든다.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한껏 푸르렀던 여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꽃도 나무도, 사람도 가장 빛나는 한 때가 있다. 우리들의 찬란했던 시절은 언제일까. 아마도 사랑했던 시절,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인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아닐까. 스페인의 작가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사랑했던 시절의 따스한 추억과 뜨거운 그리움은 신비한 사랑의 힘에 의해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게 한다.”라고 말했다. 사랑했던 그 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거리에서 바람이 눈가를 스치는 가을, 감성을 자극하는 로맨스 영화가 개봉을 했다.
영화 ‘남과여 : 여전히 찬란한’은 과거 사랑했던 두 남녀가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끌로드 를르슈 감독은 1966년 개봉해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한 ‘남과여’의 후속작에서 53년이 지난 후의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근사한 음악과 함께 그려냈다. 작은 상점을 운영하며 가족들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안느(아누크 에메 분)는 어느 날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지난날의 사랑, 장(장 루이 트린티냥 분)의 소식을 듣고 그를 찾는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장은 안느를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의 이야기를 꺼낸다.
전작이 애틋하고 섬세한 로맨스를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은 추억과 기억, 공존 속에 삶의 의미를 되짚는다. 53년 전 뜨거웠던 사랑을 뒤로하고 늙어서 치매 현상을 겪고 있는 장루이를 안느는 따뜻하게 맞이한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아름다웠던 장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나이 들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삶 속에서도 추억만큼은 생생하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클래식 멜로의 정석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연애를 주제로 음악이 돋보이는 장르가 멜로드라마인데 영화 ‘남과 여’는 전편에서 음악을 담당한 프란시스 레이가 스토리에 힘을 더하는 음악으로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는 칼로제로가 합류해 신선한 멜로디와 풍부한 감수성으로 감동을 더했다. 더불어 영화는 프랑스 도심과 자연을 담은 그림 같은 풍경이 더해지면서 가을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메마른 사회에서 사랑만이 유일한 치유의 방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요양원에서 치매에 걸려 메마른 삶을 사는 장 루이에게 안느는 사랑의 힘으로 치유를 시도하고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인간에게 망각이란 한편으로는 필요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까지 몰라보는 치매는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질병이다. 영화는 비록 53년이 지났지만 같은 배우들과 감독이 다시 모여 젊은 날의 사랑을 추억하는 노년의 사랑을 화면에 그려냈다. 사랑하는 사람도 잊어버리는 기억의 상실이 얼마나 안타까운지를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하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 19사태와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점점 각박해 지고 있으며 감성이 메말라가고 있다. 여기에 고령화 또한 급속히 전전되면서 치매 또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랑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 ‘남과여 : 여전히 찬란한’은 반세기가 흘러도 변치 않는 장과 안느의 사랑을 통해 고령화시대에 코로나 사태로 고통 받는 우리에게 치유의 방법을 제시해 준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