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매중단에도 재간접펀드 '자금 쏠림'…점증하는 사태 재발 우려
입력 2020.11.09 05:00
수정 2020.11.06 15:07
10월 말 설정액 41조7268억원 '역대 최대치'…해외투자 비중 76.6%
H2O·젠투 등 펀드 환매중단에도 '사전차단 방법'없어 손실 우려 가중
재간접펀드에 유입된 자금이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국내에서 판매된 해외 재간접펀드들에서 투자자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한지 한 달여 만에 설정액이 불어난 것이다. 이에 여전히 해외투자 비중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금융시장 변동성이 지속 확대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손실 발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9일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국내에 설정된 재간접펀드 잔액은 41조7268억원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역대 최대치다. 9월 말 잔액인 41조5177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0.50%(2091억원) 증가한 규모이며, 전년 동기의 29조7535억원보단 40.3%(11조9733억원)늘어난 수치다. 재간접펀드는 투자자금을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펀드에 투자하는 상품을 의미한다.
올 들어 재간접펀드는 지속 상승했다. 올해 1월 말 33조8252억원이던 재간접펀드 설정액은 지난 6월 말 40조4493억원까지 늘어나면서 사상 처음으로 40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지난 9월에 재간접펀드 설정액은 1183억원 감소했다. 국내에서 400억원 규모로 판매됐던 '젠투파트너스 재간접펀드'와 3600억원어치가 팔려나간 'H2O해외채권 재간접펀드' 등이 환매 중단되면서 투자심리가 한 풀 꺾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펀드 환매를 중단한 이유는 기초자산인 해외자산운용사들의 펀드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홍콩계 헤지펀드인 젠투가 운영하던 2개의 채권형 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재간접펀드도 환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영국계운용사인 H2O가 운용하던 채권펀드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해 투자자금이 묶이고 말았다.
재간접펀드에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한 달 만에 설정액이 늘어난 건 해외자산 비중을 늘리려는 기관들의 투자자금이 유입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간접펀드의 해외투자 비중은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말 해외 자산을 60%이상 담은 재간접펀드 잔액은 31조9937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재간접펀드의 76.6%에 해당하는 규모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재간접펀드는 최근 젠투, H2O 등 일부 펀드에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하면서 설정액이 감소하는 등 주춤한 모습을 나타냈다"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집행되지 못한 기관들의 해외투자자금이 남아있는데, 이 자산이 해외재간접펀드로 흘러들어가면서 설정액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만약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함께 높아지고 있단 점이다. 과거 재간접펀드는 주로 기관투자자들이 해외자산 비중을 늘리기 위해 찾던 상품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금융당국이 재간접 공모펀드의 최소 투자금을 없애면서 개인 자금이 빠른 속도로 유입됐다. 실제 지난달 말 기준 개인에게 판매된 재간접펀드 잔액은 10조4729억원으로 2018년 10월 말의 8조9552억원 대비 16.9%(1조5177억원)늘었다.
아울러 최근 재간접펀드들의 저조한 수익률도 손실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최근 한 달 간 210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은 'KTB글로벌멀티에셋인컴EMP증권투자신탁[혼합-재간접형] 종류CF'의 수익률은 -0.14%로 집계됐다. 104억원이 몰린 '키움똑똑한4차산업혁명ETF분할매수증권투자신탁[혼합-재간접형] Class C-e'의 수익률도 -0.21%로 저조한 수준이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 판매되는 207개 재간접펀드의 최근 1개월 평균 수익률은 -0.14%였다.
국내 운용사들이 재간접펀드의 손실 및 환매중단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어려운 현행 시스템 상 문제도 있다. 국내 운용사들은 재간접펀드의 기초자산인 해외펀드의 운용자산, 수익률 등 세부 정보를 현지 운용사가 제공하는 운용보고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 이에 9월과 같이 갑작스러운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투자자금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난해 공모펀드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재간접펀드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분산투자 방식으로 운용돼 손실이 나지 않는다는 입소문에 개인의 투자 비중도 크게 늘어났다"며 "코로나19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손실이 거의 나지 않는 재간접펀드에서도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해 이를 보완하고 싶어도 현행규정 상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선제적인 조치가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