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반도체 초격차 한창인데...리스크에 발목잡힌 삼성
입력 2020.09.03 13:36
수정 2020.09.03 13:41
총수의 사법·입법 부담으로 삼성 글로벌 경쟁력 상실 우려
파운드리 잇딴 수주로 경쟁력 입증 불구 TSMC 추격 악재
재계 “인텔과의 종합반도체 왕좌 경쟁에서도 타격 불가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로 초격차 기술력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반도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2개의 재판을 동시에 받아야 되면서 사법적 부담이 가중된 가운데 9월 정기국회서 지배구조를 둘러싼 법안들로 입법 리스크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재계와 반도체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TSMC 등과의 경쟁이 한층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경영 부담이 커지면서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로 편중된 사업 구조를 바꾸고자 지난해 비전 2030을 통해 오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글로벌 1위라는 당찬 목표를 제시했는데 이마저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 시스템 반도체 1위 비전 2030, 사법·입법리스크로 타격 우려
검찰이 1일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이 부회장은 2개의 재판을 같이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2017년 초 구속기소되면서 시작됐던 국정농단 재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재판이 향후 3~4년간 다시 사법리스크가 드리워지게 됐다. 여기에 9월 정기국회에서 보험업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삼성의 지배구조를 흔들 수 있는 법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돼 이 부회장의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킬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일본 수출 규제와 미·중 무역분쟁 심화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사업 현안들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이는 초격차 경쟁력으로 회사 실적을 주도하다 시피하고 있는 반도체 사업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반도체는 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약 70% 안팎을 차지하는 핵심 중 핵심 사업이다.
지난 2분기에도 매출액 18조2300억원과 영업이익 5조4300억원을 각각 기록하며 전체 실적(매출 52조9700억원·영업이익 8조150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영업이익은 전체의 3분의 2(약 66.7%) 수준으로 매출도 전체의 3분의 1을 넘겼다.
다만 이러한 호실적이 메모리 편중 구조에서 나온 성과로 비메모리반도체에서도 경쟁력을 끌어 올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메모리반도체 초호황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누렸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업황 부진으로 반도체 사업 실적이 하락하면서 포트폴리오 개선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었다.
이에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4월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총 133조원이라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획기적으로 경쟁력을 개선해 이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게 사법·입법 리스크가 크게 드리워지면서 이러한 시스템반도체 육성 전략에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오너의 경영 행보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대규모 투자와 인재 채용 등이 순조롭게 이뤄질지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는 장기적 안목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투자가 이뤄져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라며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자칫 시기를 놓치게 되면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며 언제라도 도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TSMC·인텔과 경쟁 한창인데...사령탑은 재판정에
미국 인텔과 타이완 TSMC 등 경쟁자들과 경쟁이 한창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에게 불거진 리스크는 시기적으로도 악재다.
삼성전자는 최근 IBM의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에 이어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문 업체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제품 위탁 생산을 잇따라 수주하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퀄컴의 차세대 5세대 이동통신(5G) 모뎀 칩 ‘X60’ 생산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경쟁력을 입증하면서 인텔과 AMD 등으로의 추가 수주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업계 1위 타이완 TSMC 추격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극자외선(EUV·ExtremeUltraViolet)을 활용한 미세공정을 기반으로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시장 점유율에서는 TSMC와 격차가 아직 큰 것이 현실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예상 점유율은 TSMC가 53.9%로 압도적인 1위로 2위인 삼성전자는 17.4%로 30%포인트 이상 격차가 나는 상황이다.
파운드리 사업자가 팹리스(Fabless·설계전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기술력뿐만 아니라 굳건한 상호 신뢰 구축이 이뤄져야 하는 시장의 특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로부터 파운드리 수주를 위해서는 미세공정과 패키징 등 기술력은 기본으로 설계 기술에 대한 보안성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만 전문으로 하는 TSMC와 달리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하는 종합반도체기업이라는 점이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해 왔다. 파운드리 사업자로서는 좋은 고객이 될 수 있는 애플과 퀄컴 등이 경쟁사이기도 해 이들로부터 위탁 생산 수주를 따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어 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비전2030을 통해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향상을 위해 파운드리 수주 경쟁력 향상을 기치로 내걸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실제 IBM의 파운드리 물량 수주에도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사가 기술력뿐만 아니라 시장 점유율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에게 드리워진 불확실성 리스크가 이러한 추격에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텔과의 종합반도체 업계 1위 경쟁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과 2018년 메모리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가 지난해 인텔에 다시 자리를 내준 바 있다.
하지만 올 들어 양사간 격차가 점점 좁혀지면서 하반기 대추격이 예고됐던 상황이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옴디아가 이달 말 발표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파운드리 전문업체 제외)의 2분기 매출 점유율은 인텔이 17.45%, 삼성전자가 12.49%로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양사간 격차가 4.96%포인트로 지난해 4분기(5.61%포인트)와 올해 1분기(5.23%)를 거치며 계속 격차가 줄어들는 추세였다.
인텔은 2일(미국 현지시간) 온라인 행사를 통해 11세대 코어 프로세서 정식 출시를 발표했다. 이 신제품은 기존 제품에 비해 연산 성능 20%, 그래픽 성능 2배, 인공지능(AI) 가속 기능 5배씩 끌어올리며 동영상 처리나 3D 게임 실행 성능도 크게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경쟁사들도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을 향상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마당에 수장이 경영에 전념하지 못하는 상황은 분명 악재가 될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를 중심으로 반도체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제품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래를 위한 성장에는 한계가 분명할 것이라는게 업계의 판단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업부문별로 전담 경영 체제가 잘 구축돼 있어 일상적인 일들은 큰 무리가 없겠지만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향상 등과 같은 장기적 과제들은 추진 동력이 약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규모 투자나 장기적 비전 제시와 같은 일은 오너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