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옥죄는 정부 규제…"기업하기 참 힘든 나라"
입력 2020.08.26 14:07
수정 2020.08.26 14:13
"투자·경영 위축" 기업 '개혁' 아닌 '개악' 뭇매
"코로나19에 규제폭탄까지…경영 마비 위기감"
경영권 침해 논란 상법·공정거래법 국무회의 의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한국 경제가 크게 휘청이는 가운데 정부가 기업들을 옥죄는 법안까지 강행하면서 재계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그간 기업들은 경영·투자활동 위축이 우려된다며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수 차례 피력해왔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원안 그대로 시행할 방침이다.
재계는 이들 법안이 그대로 도입되면 기업이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하면서 경영권이 훼손되고, 신사업·투자여력마저 약화돼 그야말로 경영 마비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중대표소송제, 경영권 훼손 우려…소송 리스크 4배 '껑충'
26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열린국무회의에서는 다중대표소송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법 위반 과징금 2배 상향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상법 개정안에서는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임'이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임무를 소홀히 해 자회사에 손해를 끼친 임원을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비상장기업 주식 전체의 100분의 1이나 상장기업 지분 1만분의 1만 보유해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도입 취지는 '소액주주들의 이익 보호'이지만, 승소하더라도 소액주주에게 별다른 실익이 없기 때문에 투기자본 세력들이 기업 특혜를 빌미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 투기자본들이 다중대표소송을 빌미로 경영권을 압박, 단기차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6개 주요 경제단체가 "투기자본 등에 의한 소송 남용 가능성이 있어 경영 안정성 및 합리성이 도모될 수 있는 제도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단체들은 "상장 모회사의 소수주주권 요건을 토대로 비상장 자회사에 대한 위협소송 등이 가능하다"며 "상장회사의 경우 소송 리스크가 3.9배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들의 경영활동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과감한 투자나 혁신 보다는 위험 회피를 위해 소극적인 태도로 경영에 임할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모회사 주주가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행위는 자회사-모회사간 독립성을 인정하는 현행 상법체계와 충돌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독일·프랑스·영국 등 대다수 국가에서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 제도를 도입했으나, 소송 제기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함으로써 소송 남발을 제한하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우려 "기업, 투기펀드 머니게임에 놀아날 것"
'감사위원 분리선임'에 대해선 대주주의 의사결정권이 제한됨에 따라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거나 기업 기밀을 유출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감사위원은 기업에 대한 감사는 물론,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핵심 인력으로 기업 경영에 관여할 수 있다.
현재는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사 가운데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방식이지만, 감사위원 분리선임이 도입되면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1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해야 한다.
현재도 감사위원 선임시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의결권이 3%로 한정적인 상황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임이 의무화될 경우, 투기펀드 등이 3%씩 지분을 쪼갠 후 연합해 회사를 공격할 수 있다. 그렇게 이사회에 진출한 이후엔 사업 구조조정 등 각종 안건으로 기업 경영을 방해할 수 있다.
특히 이런 외부세력이 단기차익을 노리고 한국 기업의 주주로 등극할 경우 감사위원 선임 등을 무기로 배당 확대 등에만 집중해 기업 성장 여력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지난해 엘리엇은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지분 2~3%가량 보유분을 앞세워 두 회사에 각각 4조5000억원, 2조5000억원씩 총 7조원을 배당할 것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수익 빼먹기' 시도에 나섰다. 당시 시도는 실패했지만 앞으로는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의 침투는 한층 수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 당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는 3%룰이 적용된 반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비롯한 '3자연합'에는 3% 의결권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역차별 논란을 빚기도 했다.
감사위원은 회사의 모든 정보를 열람할 권한이 있는 만큼 분리선임으로 주요 산업기술 보호 장벽을 무너뜨리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엘리엇은 지난해 현대차에 대해 공세를 펼칠 당시 자사 추천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도 요구했으며, 그 중에는 로버트 랜들 매큐언 밸러드파워시스템 최고경영자(CEO)도 포함돼 있었다. 밸러드파워시스템은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현대차그룹의 대표적인 라이벌 기업으로 손꼽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적대 세력이 제도를 악용해 이사회를 장악하게 되면 자칫 기업 경영권을 뺏기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권리 남용 부작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법개정안이 무작정 도입될 경우, 경영계의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전속고발권 폐지…"과도한 기업 수사로 부담 가중"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포함됐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권리이나 가격과 입찰 등 중대한 담합(경성 담합) 분야에서는 폐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공정위 고발이 없어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경쟁 사업자에 의한 무분별한 고발, 공정위·검찰의 중복조사 등으로 적지 않은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인식이다. 결과적으로 기업만 부담을 중복으로 떠안게 되는 셈이다.
재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신규투자나 성장동력 발굴이 아닌 사법리스크 관리에 기업의 자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경쟁법 위반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과 행정처벌이 동시에 부과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 지분율 요건을 강화한 규제 역시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지주회사는 현재 상장사 지분 20%, 비상장사 지분 40%를 확보하면 자회사나 손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이 도입되면 상장사는 각각 30%, 50%로 높여야 한다.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만큼 기업들의 자금 마련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특히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과징금의 상한은 두 배로 높아진다. 관련 매출액의 일정 비율로 정한 과징금 상한은 담합이 10%에서 20%로, 시장지배력 남용은 3%에서 6%로, 불공정거래행위는 2%에서 4%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비용 부담만 커졌을 뿐, 규제 강화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거의 적다는 게 재계의 진단이다.
김현수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공정경제질서 확립 필요성에 대해 다수 기업들은 공감하고, 개선노력을 하고 있다. 일부 기업의 문제 들어 모든 기업을 일률규제하면 교각살우 위험이 있다”면서 “경제계도 수용가능한 것은 수용할 방침인 바 정부와 국회에서도 부작용 우려에 대해서는 경제계 대안 등을 합리적 검토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