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홍수경보③] 달러 빼고 다 역대급 상승…드리워지는 '스테그플레이션' 그림자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0.08.05 05:00
수정 2020.08.04 20:44

금·부동산·주식에 가상화폐까지 '꿈틀'…코로나發 불안에 몰리는 돈

공격적 경기 부양책에도 짙어 가는 불황 그늘…금융 리스크 커진다

초유의 통화·재정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사상 최대로 불어났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역대급 돈풀기에 나섰지만, 정작 시장에선 자금이 생산과 투자‧소비로 흐르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불어난 유동성은 부동산 시장에 몰리거나 은행 예금 같은 단기자금으로 흘러드는 등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곳곳에서 '유동성 홍수경보'가 울리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경제적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핵심 금융 자산들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의 공격적인 통화량 확대에 힘입어 약세를 보이고 있는 달러를 제외하면, 금부터 부동산과 주식은 물론 최근에는 가상화폐까지 다시 꿈틀거릴 조짐을 보이는 등 거의 모든 자산이 몸값을 높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 한국은행의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불황의 그늘이 더욱 짙어지면서 일각에서는 금융발 스테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값은 올해 들어서만 40% 가량 급등한 상황이다. 국제 금시장에서 1온스당 금 가격은 지난 달 말 기준 1973.00달러로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1513.46달러)보다 40.3%(459.54달러)나 올랐다. 같은 기간 한국거래소에서 매매된 금 시가 역시 3.75그램 당 21만2100원에서 29만4338원으로 38.8%(8만2238원) 상승했다.


이에 금과 연계된 파생상품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금을 기초로 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 상품인 ‘KINDEX 골드선물 레버리지(합성H)’는 지난 달 말 종가가 2만2540원으로 연초보다 50% 넘게 오르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값의 고공행진은 코로나19 여파로 풀이된다. 금융권의 불안이 커질수록 주요 안전 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는 확대되는 경향을 띄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금 가격도 아직 고점이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해지고 있어서다.


이 같은 자산 가치 오름세는 비단 금뿐만의 얘기가 아니다. 어디보다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곳은 부동산 시장이다. 최근 1년 동안 우리나라가 가진 자산은 1000조원 넘게 불어났는데, 그 중 80%가 부동산 가치 상승분일 정도였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대차대조표를 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총 국부는 1경6621조500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6.8%(1057조7000억원) 늘었다. 해당 국부 증가액의 80.5%인 851조원은 건설자산과 토지자산 등 부동산의 몫이었다.


이에 정부가 연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역효과는 점점 커져만 가는 형국이다. 부동산114가 발표한 수도권 주간 아파트 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 달 마지막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11% 올랐고 재건축과 일반 아파트도 각각 0.07%와 0.12%씩 상승했다. 같은 달 초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3주가 지났지만, 늘어난 보유세 부담으로 인해 이른바 똘똘한 한 채를 선호하는 현상이 커지고 중저가 아파트에 대한 매수세가 계속되면서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는 분위기다.


대표적 위험자산인 주식 거래 역시 활황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지난 3월 중순 코스피 지수는 1500선마저 무너지며 위기를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난 달 말 2249.37에 장을 마감하며 반년도 안 돼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가 국내 증시를 견인하는 가운데 빚을 내면서까지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전체 신용융자 잔고는 지난 달 사상 처음으로 14조원을 넘어선 실정이다.


이런 위험자산에 대한 수요는 마침내 가상화폐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달 27일 1만 달러 벽을 돌파했다.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의 시세는 1400만원 가까이 치솟은 상태다. 이에 대해 일본 닛케이 신문은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 양상에 따른 외환시장의 불안이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이 와중 유일하게 맥을 못 추고 있는 핵심 금융 자산은 달러다. 유로·엔·파운드 등 주요국 통화와 비교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달에만 4.1% 급락했다. 월간 기준으로 2010년 9월(-5.4%)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본격적인 돈 풀기에 나서면서 달러만큼은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처럼 금융 자산들의 가격은 계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경기 침체의 골은 한층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의 전 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3.3%까지 고꾸라졌다. 이는 외환위기 한파가 몰아닥쳤던 1998년 1분기(-6.8%)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수출이 16.6% 급감하며 197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한 여파가 컸다.


더욱이 한은이 코로나19 이후 유래 없는 제로금리를 현실화시키면서까지 적극적인 통화 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은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한은은 올해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이어 지난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가 단행되면서 한은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실물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안전 자산을 중심으로 금융권에 돈이 몰리는 모습"이라며 "특히 시장에 불어난 유동성이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하면서 부동산과 증시로의 쏠림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불확실성 속에서 자산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은 불안 요인"이라며 "특히 전반적인 경기는 침체가 심화하고 있음에도 금융 자산의 가치만 눈에 띄는 상승세를 이어가는 추세는 금융 리스크를 가중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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