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국회②] 스스로 적폐가 된 민주당, 낯 뜨거운 '감사원장 찍어내기'

최현욱 기자 (hnk0720@naver.com)
입력 2020.08.01 04:00
수정 2020.08.01 09:50

'文대통령 임명' 최재형, 소신 행보 이어가자 민주당서 '적폐몰이'

文정부 출범 후 그토록 외친 '적폐 세력' 과거 행보와 다르지 않아

노무현 정부 靑수석 조기숙 "최재형 보며 박근혜 정부 떠올랐다"

통합당 "대한민국 정치 상황, '오만과 폭주'…아찔하고 두려울 지경"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최재형 감사원장 찍어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본질적 이유는 '독립기관' 감사원을 이끌고 있는 최 원장이 정부여당의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불만에서 비롯된 것인데,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최 원장을 임명했을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하나같이 최 원장을 '미담 제조기'로 지칭하며 극찬을 쏟아낸 바 있다.


최 원장을 향한 민주당 의원들의 공세는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가 임박하면서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현재 감사원은 정부가 월성원전 1호기를 지난 2018년 조기 폐쇄한 결정이 타당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혹여 '타당성 없음'의 결과가 나올 경우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더해 청와대가 현재 공석으로 남아있는 감사위원 자리에 김오수 전 법무차관을 추천했는데, 최 원장이 '친정부 인사'라는 점을 들어 거부 의사를 표현한 사실이 전해진 것도 미운 털이 박히게 된 이유라는 분석이다.


최 원장의 소신 발언이 여권 인사들의 심기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최 원장은 지난 4월 월성원전 조기폐쇄와 관련한 산업부 감사 과정에서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적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한 바 있다.


지난 2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범여권 의원들은 최 원장을 향해 집요한 공격을 이어갔다.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맞지 않으면 사퇴하고 나가 정치를 하라"고 겁박하기도 했다. 헌법에 임기가 보장된 독립기관의 수장에게 입법부의 국회의원이 사퇴를 종용한 것이다.


최 원장을 향한 여권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정부의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기관의 수장을 향한 집요한 공세를 펼치는 행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그토록 청산 대상이라 외쳤던 이른바 '적폐 세력'의 과거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자신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임명했던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태도를 180도 바꿔 맹비난에 나서는 점도 정당성을 부여받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앞서 여권은 현 정권 관련 인사들의 비리 의혹을 수사한다는 이유로 윤석열 검찰총장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댄 전례가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 원장 관련 기사를 링크하며 "박근혜 정부 시절 한 사건이 데자뷔처럼 떠올랐다"고 표현했다.


조 교수가 언급한 사건은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장훈 중앙대 교수를 감사위원 후보로 추천하자 양건 전 감사원장이 장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고, 결국 임기를 1년 7개월 남겨두고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사퇴했던 일을 말한다.


조 교수는 "2013년 당시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는 감사원에 대한 인사개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고, 민주당 법제사법위원이었던 박지원 전 의원은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헌법을 어기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했다"며 "이번에 민주당이 최재형 감사원장의 사퇴를 거론하며 항명이라는 말도 나왔다. 민주당은 지난 정부에서 자신들이 했던 말만 기억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좋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176석 거대 여당의 이 같은 행보에 야당에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 민주당은 각종 법안 처리 및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야당과의 합의 없는 단독 드라이브를 강행하고 있다.


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은 "'우리 총장님'이라고 하던 윤석열 총장과 '미담 제조기'라고 하던 감사원장이 청와대 편을 들지 않는다고 느닷없이 적폐로 몰아 쫓아내려 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오만과 폭주' 그 자체일 것"이라며 "적법 절차는 고사하고 오랜 국회운영 전통마저 다수의 폭력으로 짓밟은 집권세력의 위태로운 폭주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고 두려울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최현욱 기자 (iiiai072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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