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결과?…펭수·라이언에 자리 내주는 '은행 캐릭터'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입력 2020.05.07 06:00
수정 2020.05.06 17:59

야심차게 내놨지만 '스토리 부족'…기존 캐릭터 인기에 밀려

신한 '써니'·국민 '리브'·우리 '위비'·기업 '기은센' 등 개점휴업

펭-카(왼쪽)와 펭-모티콘(오른쪽) 사진 = KB국민카드

금융권에 '캐릭터 비즈니스'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지만 야심차게 등장했던 자체 캐릭터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 디지털 금융에 친숙한 젊은 고객에 빠르게 다가가기 위한 방편에서 추진됐지만 '인지도'에서 한계점이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EBS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 펭수를 활용한 'KB국민 펭수 노리 체크카드'는 출시 하루만에 4만장이 발급됐고, 출시 한 달만에 발매량 20만장을 넘겼다. 펭수는 특유의 인사법인 '펭하(펭수하이)' 포즈와 다양한 표정의 이모티콘으로 금융계의 스테디셀러에 등극했다. KB국민은행도 '펭수통장'을 내놓고 캐릭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다른 금융사들도 마찬가지다. NH농협카드는 카카오프렌즈 '라이언'을 카드 디자인에 적용한 '라이언 치즈 체크카드'를 출시 5개월만에 50만장 팔아치웠다. 신한카드가 내놓은 미니언즈 카드 역시 지난해 50만장 판매를 넘겼다. SC제일은행은 마블 캐릭터 토르와 헐크 디자인을 활용한 체크카드와 통장을 출시했고, 우리은행도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핑크퐁과 아기상어'를 내세운 통장을 내놨다.


금융사들이 캐릭터 경쟁에 한창인 이유는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젊은 고객층의 관심을 끌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캐릭터 모시기'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마케팅 비용측면에서도 기존 유명 배우나 스포츠스타의 광고료 보다 효과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피겨여왕' 김연아, '한류스타' 김수현 보다 펭수 한명이 효과 대비 비용면에서 낫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은행권에서는 처음 거래를 튼 금융회사를 주거래 금융회사로 삼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캐릭터를 통한 '첫 은행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선점 전쟁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농협카드에 따르면, '라이언 치즈 체크카드' 발급 연령대 비율은 지난달 27일 기준 10대가 33.9%로 가장 높았다. 카드 3장 중 1장은 10대에게 발급된 셈이다. 이어 20대도 21.5%를 차지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60.2%로 남성(39.8%) 보다 크게 높았다.


'캐릭터카드' 3장 중 1장은 10대…금융사 '첫 고객' 유치경쟁


그사이 각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키우며 전면에 내세웠던 캐릭터들은 찬밥신세가 됐다. 신한은행의 '쏠', 국민은행의 '리브', 우리은행의 '위비', 기업은행의 '기은센' 등 자체 캐릭터들은 외부에서 굴러온 돌에 밀려 자리를 뺏기는 등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직면하고 있다.


금융사 자체 캐릭터들은 주머니에서 떨어진 동전을 형상화하거나 부지런히 꿀을 모으는 꿀벌 등 저마다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금융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객들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시중은행 한 임원이 "행원 중에 자체은행 캐릭터를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할 정도다.


금융권이 캐릭터 경쟁을 벌이는 게 금융업의 본질과는 멀어지는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상품도 아닌 캐릭터로 승부를 한다는 게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캐릭터의 효과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신뢰가 생명인 금융사가 지금처럼 캐릭터에 기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KB경영연구소 권세환 책임연구원은 '스토리로 말하는 캐릭터 마케팅, 펭하' 보고서에서 "캐릭터 마케팅은 유명 모델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폭넓은 소비자층에 친밀감을 주며 고객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쉽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캐릭터의 지속적인 관리로 새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함으로써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활용성을 확장시키는 일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권 연구원은 "캐릭터 마케팅에 실패한 사례는 대부분 캐릭터에게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스토리텔링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기업이 지향하는 핵심가치를 녹여내지 못하고 캐릭터 자체에 의의를 두거나 대중에게 지속적인 노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실패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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